제대로 된 기후정의법을 만들라

지난해 9월 국회는 반대표 하나 없이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첫째,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할 것, 둘째,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적극적으로 상향할 것, 셋째, 2050년 순배출 제로를 목표하는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수립을 촉구할 것, 넷째, 국회 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 다섯째,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준수할 것 등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국회가 더 이상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국회의 가장 큰 소임인 관련 법제도 개선 작업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이제까지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다루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를 대체할 기후위기 대응법 제정은 필수적인 것이며,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주요 요구에도 계속 포함되었던 것이다. 
 
근거가 되는 법이 있어야 정부 조직이 움직일 수 있고 예산이 배정될 수 있으며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거나 감축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 주체들에게 요구 또는 제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내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구성은 감감 무소식이고, 국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지난해 말,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우려가 큰 ‘신공항 특별법’을 여당과 제1야당 합의로 졸속 통과시키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국회의 비상 대응 결의안이 구두선에 불과했고 주요 정당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진정성을 갖지 못한다는 반증이었다. 
 
이는 지금 기후위기 대응법안 심의의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러 의원들이 공동 발의로 기후위기 대응을 다루는 법안 7개가 제출되었지만, 도리어 법안은 옆걸음을 거듭했다.
 

‘녹색성장법 시즌 2’라니

 
지난 6월 28일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는 국회 본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 심사를 중단하고 제대로 된 기후정의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지난 6월 28일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법안 소위는 이제까지 제출된 7개 법안을 병합하여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라는 법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경부와 전문위원의 통합의견으로 제시된 이 법안은 이름과 내용 모두 ‘제2의 녹색성장법’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막판에 환노위원장이기도 한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두 거대 정당이 타협한 결과다. 
 
법안과 이를 설명하는 통합의견을 보면, 녹색성장이 지금도 유효하고 필요하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고, 기업 지원과 신기술 개발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기후변화 대응에 철저히 실패하고, 그토록 비판을 받는 4대강사업이라는 괴물만을 낳았음을 망각한 것만 같다. 그리고 기후위기 가속화의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과 시장 중심의 접근은 한국이 하던 대로(business as usual) 해도 좋고 ‘기후악당 국가’의 처지를 면하지 못해도 좋다는 신호일 수밖에 없다. 
 
통합의견은 법안의 주요 내용에서도 절충이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후퇴했다. 무엇보다 2030년 중장기 감축목표(NDC) 설정을 포함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며, 2050년 탄소중립 의무마저 명시하지 않고 있다. 통합의견은 기후위기의 긴급성에 따른 국제 사회의 논의 결과에 따라 5년 이내에 감축 목표를 더욱 상향하게 될 경우 국회의 통과를 기다리지 않고 대응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분명하고 과감한 중기 감축목표를 제시할 때 따르게 될 사회적 논란과 부담을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의혹이 충분하다. 
 
시민사회가 요구해 온 인권기반 접근, 즉 기후정의의 원칙과 사업주 보상 책임 같은 조항들도 빠졌고, 청소년, 농민 등 여러 당사자들도 법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산업 전환에서 기업만 지원하는 방식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기존 6명의 발의안에는 없던 CCUS(탄소포집 및 이용 기술 육성)와 국제 감축사업(다른 나라에서의 산림 조성 사업 등을 통해 국내 감축으로 인정받는 것)이 갑자기 등장한 부분이다. CCUS는 언제 실용화될지도 알 수 없고 국제 감축사업이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결국 둘 다 국내의 감축 노력이 실패할 경우 변명거리나 잘못된 감축 수단에 대한 위험천만한 투자를 기본법에서 뒷받침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마침 8월 초순 공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서 2050년에 감축 못하고 남은 배출의 상당 부분을 CCUS로 해결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을 보면, 이 법안과 시나리오가 한 세트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올바른 기후정의법이 담아야 할 것

 
빛 좋은 개살구, 또는 오히려 잘못된 기후 해법을 정당화하는 법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기후위기 대응의 분명한 원칙과 방식이 뼈대를 이루어야 한다. 무엇보다 명칭에서부터 탄소중립과 양립할 수 없는 ‘녹색성장’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검토되는 법안은 2050년 탄소중립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하는 것조차 불확실하다. 2050년 탄소중립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이를 정부의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 또한 30년 뒤 뿐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할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시스템 변화가 포함되도록 2030년 NDC를 명시해야 한다. 이는 국제 사회의 합의 수준을 반영하여 최소한 2010년 대비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CCUS와 국제 감축원 같은 잘못된 해법들이 법안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며, 대신에 허용되는 잔여 배출량을 고려하는 ‘탄소예산’ 접근을 명시하여 감축의 과정과 분명한 성과를 중심으로 정책과 사업이 진행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법안은 미래의 우리 사회를 제시하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시장과 새로운 사업 기회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우리 공동의 집을 지키고 살피는 임무와 나누어야 할 책임을 밝혀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법은 배출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고 부담을 지우며, 피해자와 광범한 이해당사자의 피해 방지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런 내용이 담보될 때 ‘정의로운 전환’은 실체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법안의 명칭 역시 기후위기 대응과 방향을 함축하는 ‘기후정의’를 포함하는 기본법이 되어야 한다. 
 

법으로 충분할까?

 
기후위기를 가속화 하는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에 설치된 비행기 모형에 ‘탄소중립 역행하는 가덕신공항 절대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하지만, 결국 탄소중립법안은 지난 8월 19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의원만의 찬성으로 의결되고 말았다. 논점이었던 2030년 NDC 수치는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되, 정부가 감축목표를 40% 이상 감축된 수준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부대의견을 다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이런 수치가 국제 사회에서의 책임이나 한국 자체의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지만, 법안의 논의 과정도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두 거대정당 의원들의 논의는 기후정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녹색성장’을 존치할 것인가, 그리고 2030 목표를 명시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만 집중되었다. 과거 자신의 정부에서 실패한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국민의힘, 그리고 기후악당 국가를 어떻게 벗어날지에 대해 고민도 없고 의지도 없이 통합의견에 합의하려는 집권 다수당 둘 다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하지만 환노위 바깥의 국회의원들은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고, 대선 정국에서도 기후위기 대응법안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한국 기후정치의 현 주소다.  
 
환노위에서 의결된 녹색성장 탄소중립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까지 그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산업계가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기후정의 운동은 법안의 미비함과 부당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논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두 거대정당의 문제의식과 프레임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후정의법은 2050년까지 앞으로 한 세대에 걸쳐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 실현의 바탕이 될 법이다. 법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만들어진 법은 이후 정책과 예산의 수립과 적용을 좌우한다. 그리고 좋은 법을 만드는 것보다 잘못된 법의 후과를 감당하는 게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야말로 지난 녹색성장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아픈 교훈이다. 지금과 같은 엉뚱한 법안을 졸속 처리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환노위 논의를 멈추고 어떤 기후위기 대응 방향이 요구되며 어떤 법안이 필요한지에 대해 범사회적인 토론의 장을 열어젖히는 게 맞을 것이다. 
 
법은 그 사회적 역량을 반영하며, 법으로 모든 것이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기후정의법은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수단이지만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세부 방안 작성과 후속 대책 수립, 차기 정부에 기후위기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주역으로 만드는 것, 기후위기 대응을 우리 정치의 일상적이고 중심적인 의제로 만드는 것, 이런 모든 노력들이 필수적이다. 기후정의법 논의는 법안의 내용 못지않게 우리의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기후위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걸음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더 큰 토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글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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