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론화위원회가 놓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쟁점들

전국 환경연합 회원들의 고리1호기 폐쇄 고리 현지 캠페인 ⓒ함께사는길 이성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다되어 간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이다. 그간 시민사회단체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비롯해서 핵폐기물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 해결책으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해 왔다.
 
 

함정에 빠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문제는 시민사회의 제안을 편의적으로 사용한 정부다. 산업부 자문기구 성격으로 공론화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제한하고,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 구성의 편파성 문제가 불거져 시민사회단체는 공론화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행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6월 지방선거 직후부터 서울, 부산, 광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토론회, 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일방적인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을 바라보는 언론의 반응은 차갑다. ‘이미 다뤘던 내용의 재탕, 삼탕식’ 토론, ‘일방적인 발표 이후 몇 차례 질의 응답’만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핵발전소 지역주민 대표로 선정된 위원 5명 중 3명이 지역의원 출신인데 이들이 모두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낙선해 지역대표성을 지니기 어렵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모두 시민사회단체가 애초 지적해왔던 한계라는 점에서 현재 공론화위원회는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져버린 형국이다. 
 
이렇게 드러난 공론화위원회의 문제가 있는 한편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도 있다. 이들 문제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더 살펴보자.
 
 

사용후핵연료 포화년도가 불명한 상황에서의 공론화

 
논란 속에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 예산을 투입해 공론화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현재 발생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뜨거운 열과 높은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최소 10만 년 동안 생태계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 사용후핵연료 특성상 이를 보관할 기술개발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처분부지 선정은 더욱 요원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의의 시작은 현재 사용후핵연료가 얼마나 있으며, 임시저장고가 언제 포화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임시저장고 포화시점이 분명해야 이후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공론화위원회는 이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간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가 2016년 포화된다며, 시급히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 내부에서조차 현재의 저장방식을 바꾸면 2024년까지 저장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음에도 언론을 통해 ‘2016년 포화설’을 공공연히 유포시키며 하루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1년 남짓 남은 2016년 포화와 10년의 기간을 둔 2024년 포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또한 현재 습식저장고 이외에도 건식 임시저장고 건설 등 다른 선택사항이 있음에도 ‘공론화의 시급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시절 정부가 밝힌 2014년까지 공론화 완료, 대통령 임기 중인 2017년까지 중간저장 부지선정 및 착공이라는 이미 짜인 일정을 수행하기 위한 공론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쪽에선 공론화, 한쪽에선 재처리 협상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7월, 서울에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진행되었다. 토마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차관보와 박노벽 한미원자력협정개정 협상전문대사가 참여한 이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간 정부는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연구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현행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하지 않는 한 재처리 연구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외교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해 수년째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정부 안에서 한쪽에선 사용후핵연료를 어찌하면 좋을지를 국민들에게 묻는 절차를 진행 중이고, 다른 한편에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해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는 불일치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시민사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단일부처가 아닌 범부처적 성격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수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수용되지 않았고, 결국 2016년인지 2024년인지 애매하지만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차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토론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갑자기 나온 지하연구시설 구상, 그리고 의혹들

 
한편 울진에선 SK건설이 ‘지하연구시설’을 울진군에 제안하면서 이것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하연구시설(URL)’ 이란 표현만 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문자 그대로 지하에 있는 연구시설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URL이란 영어 약자도 Underground Research Laboratory 즉 지하연구시험실이란 뜻이다. 이에 대한 설명 역시 ‘지하환경(암반 변화특성, 지하수 유동변화) 등을 연구하는 시설’이라고 되어 있어 내용을 모르는 이들은 그냥 순수 과학연구시설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연구시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지하연구시설’이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해 10만 년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야 하기에 세계 각국은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단계에선 방사성 물질을 이용하지 않지만, 울진은 이미 핵발전소가 가동중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연구시설 건설을 계기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충분히 지역주민들이 시설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지만,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제안이 진행된 것이다. 
 
이 사건은 아직도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에 빠져있다. 실제 연구를 진행할 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인 SK 건설이 이런 제안을 했다는 점, 제안 내용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환경관리공단 등 공공기관이 참여기관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혹은 남아있다. 정부가 민간 기업을 앞장세워 지역 민심을 살펴본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계속 남아 있다.
 
 

지금은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어야 할 때

 
다른 계획 추진과 달리 공론화 계획에선 ‘회귀성 원칙’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회귀성 원칙이란 논의 과정을 통해 설사 결정이 끝난 이후라도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도 5대 공론화원칙 중 하나로 ‘회귀성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작년 10월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어 그간 적지 않은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상태로 그 활동이 지속된다면 공론화 결과는 보고서 형태의 문서로만 남을 뿐 실효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공론화 방식은 설사 각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이견이 존재하더라도 절대 다수의 의견과 합리적인 결정 과정을 통해 서로가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방식이다. 따라서 형식적인 토론회를 반복하거나 설문조사 등 기존 의견수렴 절차를 따르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갖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학습하고 논의하는 숙의(熟議)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한두 번의 이벤트로는 공론화가 될 수 없고, 인구나 연령, 지역비례, 그리고 지역 특성 등이 고려된 많은 패널들이 학습과 토론을 반복하고, 이를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론화 프로그램은 공론화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에 정확히 빠져 있다. 과거 19년 동안 9차례나 반복되었던 핵폐기장 찬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지금까지 투여된 1년의 시간과 예산은 결코 아깝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공론화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논의 과제 등 핵심적인 부분을 보완해서 새로운 공론화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일이다. 지금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의 또 하나의 숙제로 떠오른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또다시 혼란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ja@energyjustice.kr

 

제작년월: 

환경단체 소식

사이트 소개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뉴스&월간 환경잡지 입니다.

청소년 보호 정책

구독

구독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