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1년, 우리는 무엇을 했나

지난 11월 4일 신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발효되었다. 지난해 12월 12일, 제21차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지 11개월만이다.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파리협정의 신속한 발효는 현재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어수선한 국내 상황으로 모두들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국회, 정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발효 하루 전인 11월 3일에 극적으로 파리협정 비준에 동참했다.    
 

파리 이후 1년, 마라케시와 트럼프

 
cop21 기후변화 유엔회의 ⓒCOP PARIS
 
파리협정 발효 후 처음으로 11월 7일부터 마라케시에서 기후총회가 열렸다. 2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19일 새벽 파리협정의 성실한 이행과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기후 및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마라케시 행동 선언문(Marrakech Action Proclamation for Our Climate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을 채택했다. 빈곤퇴치와 식량안보를 위한 차원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번 기후총회는 파리협정의 실제적 이행기반을 준비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기후행동’ 총회(COP for Action)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번 마라케시 기후총회의 최대 화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었다. 미국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파리협정 탈퇴,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약정 철회 등 기후행동에 역행하는 그의 발언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당선 소식을 접했던 기후총회 첫 주, 참가자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였다. 그러나 2주차 시작된 고위급 회담에서 반기문 총장은 “한 때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우리는 이제 멈출 수 없는 것(unstoppable)으로 만들었다.”며 “트럼프 당선자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의논해 현명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가 합의한 파리협정은 이미 불가역적(irreversible)”이라고 지적했고 존 케리 미국무장관은 “기후변화는 당파적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중국의 기후변화 담당 장관인 셰전화는 “첫째, 트럼프 당선자가 무엇을 하건 파리협정은 견지될 것이다. 둘째,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어떻게 바꾸든 중국은 국제사회에 약속한 정책을 그대로 이행할 것이다. 셋째, 중국은 2017년 전국적 차원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기로 한 만큼 한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와 탄소시장 협력을 증진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중국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파리협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기후정의 없이는 어떠한 평화도 없다 ⓒAvec Arbre-Evolution
 
파리협정은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인 ‘기후변화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정한 새로운 규범이다. 지구적인 과제를 개별국가 차원에서만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2020년 이후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정한 ‘신기후체제’의 출범은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등장한 1945년 UN의 출범에 버금갈 만한 사건이다. 
 
2005년에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세계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37개 선진국에만 감축의무를 부과하고 나머지 80퍼센트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선진개도국과 후발개도국에는 감축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합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구나 위로부터의 감축의무부과는 각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 미국을 비롯해 일본, 러시아의 탈퇴를 불렀다. 이에 반해 파리협정은 선진국은 물론 그동안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가로 자리매김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180여 개국이 2030년까지의 자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자발적 감축기여방안(INDC)을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명실상부한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체제이다. 
 
2009년 제15차 코펜하겐 기후총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가 먼저(Me First)’라는 기조 아래 2020년 배출전망치(BAU)대비 30퍼센트 감축을 자발적으로 선언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정,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 등을 했지만, 4대강사업과 자원개발이 녹색성장으로 둔갑하고 구체적인 기후변화 정책제시 없이 5년 후 OECD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치가 가장 빠른 국가로 자리 잡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2015년 파리 기후총회에 앞서 자발적 감축기여 방안을 제출해야 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직면했다. 지난번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에 현재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 고려한 목표치를 제시했다가 다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아 지금의 37퍼센트 감축 목표를 제출하게 됐던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대안이 37퍼센트 감축 목표 중 11.3퍼센트는 해외 감축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에서 감축분을 사오는 것이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지만, 파리협정 6조에서 시장 메커니즘 활용을 제시했기에 향후 국내 기업이 개도국에 나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하게끔 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는 1조 달러의 무역 규모의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다. 동시에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IEA, 2015년). 그 만큼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글로벌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에너지 사용이 높은 제조업 비중이 30퍼센트를 넘고 주력업종의 에너지 효율성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획기적으로 감축할 여지가 많지 않은 우리 현실을 직시한다면 파리협정 채택으로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기후행동정책의 방향과 동력 상실

 
올 2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국무조정실 산하로 이관되고, 기획재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운용 총괄을, 국무총리실이 기후변화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범부처 참여 총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체계 개편을 했다. 그러나 당초 8월에 발표하겠다던 로드맵은 지난 11월 1일 국무조정실 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점검 대토론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구체적 방안이 준비되지 못했다. 점검해야할 어떠한 내용도 제시하지 못한 채 올해 말까지 1차 로드맵을 수립하고 2, 3차례에 걸쳐 보완해 2019년경 확정할 방침이라 발표해 참석자들의 원성만 듣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무엇보다 로드맵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부 부처와 관련 기관 전문가 소수의 사람들만 관여되어 폐쇄적으로 정해지는 이러한 진행 방식은 기후변화 대응에 전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하는 사회적 수용성을 얻기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국무조정실이 기후변화 대응의 컨트롤 타워를 맡기에는 인력과 위상이 걸맞지 않고, 이를 위한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져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파리 기후변화협약 총회 기조연설에서 “2030년까지 에너지신산업을 100조 원 규모로 키우고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에너지 프로슈머, 전기자동차 보급, 태양광 비중 확대, ESS 확대 등의 키워드로 제시된 에너지 신산업은 정작 중요한 에너지 전환과 낮은 전기 가격은 건드리지 않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속빈 강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 대 보급, 비화석연료 비중 20퍼센트 달성을 제시했고, 프랑스와 영국은 2023년까지 현재 가동중인 석탄 화력발전소를 더 이상 가동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할 계획을 밝혔다. 미국 역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8퍼센트 달성을 제시했다. 우리도 온실가스 배출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발전부문에서 탄소배출 줄이는 방안을 강화해야한다. 기술발전에 따라 경쟁력이 대폭 강화되고 있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비중을 확대해야한다.
 
다행히 전력저장장치에 있어 우리나라는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공급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력의 발전, 송전이 공기업 형태로 되어있어 시장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재생에너지의 비중 증대에 매우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줄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및 건물, 가정에 있어서의 활용증대를 위한 각종 규제여건의 획기적 개선과 공기업인 발전회사들이 더 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탄소사회에 대한 정부, 기업, 시민 등의 경각심과 행동에 대한 인식 제고가 절실하다. 정부와 비정부단체들에 의한 협력 프로그램의 효율화로 탄소배출 저감과 사용효율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업은 발전, 성장과 탄소배출량의 증가는 과거와 같은 상관성을 갖지 않는다는 데 대한 확신이 꼭 필요하다. 이미 선진국은 기술 발전을 통해 성장과 탄소배출량이 비례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저탄소 성장, 발전의 기술과 패러다임의 변화는 넓은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사업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기후행동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마라케시 총회에서 각 국가들이 내년 5월 차기 협상회의 전까지 사무국에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출하고 이를 근거로 2018년까지 협정 이행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2018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작성하기로 발표했다. 1년이라도 당겨진 것은 다행이다. 파리협정 이후 1년간 제대로 된 기후정책 하나 없어 하루가 아쉬운 지금, 향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들이 미뤄지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중요한 국가기후정책을 바로 잡고 행동할 때다. 더 늦어서는 안 된다.   
 
 ※ 이 글은 기후변화센터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김소희 (재)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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