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반핵운동 “비 온 뒤에 땅은 굳어진다!”

한국반핵운동  “비 온 뒤에 땅은 굳어진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ja@energyjusti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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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진행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탈핵행사 후의 시가행진 ⓒ함께사는길 이성수


동일본대지진이 있었던 3월11일은 금요일이었다. 다음날 12일부터 후쿠시마 1호기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주 주말과 월요일을 거치면서 2~4호기도 폭발했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 무언가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었고,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급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16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범시민사회단체 긴급대책회의>가 소집됐다. 누군가 일일이 연락을 돌릴 시간도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모인 이들은 약 80명. 경주, 군산 등 4개지역에서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불법, 탈법으로 진행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반대운동을 벌이던 2005년 이후 최대의 인원이 불과 며칠 만에 모였다. 그만큼 한국반핵운동은 힘이 약화된 상태였고, 전국을 통 털어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극소수의 활동가들만이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한국반핵운동의 비약적 성장

그리고 1년. 후쿠시마 핵사고는 한국반핵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환경단체와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투쟁으로 치부되던 운동이 이제는 종교계, 생협, 노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었고,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소개해도 모두 절판되어 복사해 소개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지난 1년간 후쿠시마 핵사고와 핵발전의 문제점을 다룬 10여 권의 책이 새롭게 출판되었다. 인터넷에는 방사능 문제를 우려하는 주부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졌고, 해외 각국의 핵소식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타고 넘쳐나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1년을 맞는 지난 3월 10일,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탈핵행사가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서울 행사의 경우 7000~8000명, 부산의 경우 1000명 이상이 탈핵을 주제로 모여 문화행사와 각 단체의 부스를 만원사례로 만들었다. 과거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있을 때, 해당 지역주민들이 수천 명씩 상경해 집회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탈핵’을 주제로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국민들의 염원은 컸고, 많은 이들은 이것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녹색당과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탈핵의 열기는 뜨거웠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정치권의 생각 전체를 바꿔놓았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탈핵’은 진보정당의 공약이기는 했지만, 실제 운동진영 내에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회의론이 많았다. 체르노빌 사고일에 맞춘 행사는 대부분 환경단체의 몫이었고, 심지어 환경단체 내부에서조차 반핵운동은 원칙적이기는 하지만 대중화되기 힘든 운동으로 각인돼 있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1년을 거치면서 이제 탈핵은 진보진영 전체의 화두가 되었다. 그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던 민주당마저 ‘핵발전소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의 정점에는 녹색당 창당이 있다. 그간 ‘녹색당’이란 이름을 내건 정당은 몇 차례 나온 적이 있었으나, 녹색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거나 정당법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창당에 실패했다. 현행 정당법은 창당을 위해 최소한 5개 광역도시에 각각 1000명의 당원이 있을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신생정당에게는 너무나 높은 장벽이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녹색당은 7000명의 당원을 가진 정당으로 당당하게 창당했다. 그리고 핵발전소 현안문제가 있는 영덕과 부산 기장군에서 후보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 모든 것이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반발은 너무나 견고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정부와 여당은 단 한 번도 ‘탈핵’을 언급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핵사고 일어났다고 핵발전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후퇴하는 것”이라며 핵산업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거나 정부의 원자력진흥계획을 통해 “후쿠시마 핵사고를 핵발전소 수출의 기회”로 삼기 위한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흐름은 총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급기야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을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명목상으로는 여성과학자를 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여성과학자 중에서도 ‘핵공학자’를 선정한 것은 핵산업계와 핵발전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새누리당이 자신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었다. 지역구 선거에서도 핵발전소 현안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모두 정부의 핵발전 정책을 옹호하거나 관련 발언을 하지 않는 등 묵묵부답 상태를 유지했다. 


한차례 실패, 이제 거품은 사라졌다

그리고 선거가 끝났다. 안타깝지만 선거의 결과는 야당의 참패다. 탈핵 문제 이외에도 다른 많은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었고,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선거였지만, 총선은 152석을 새누리당이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탈핵문제를 중심으로 총선 전후를 달려온 이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거품의 붕괴’였다.


사실 한국의 선거는 아직 정책선거가 아니다. 다양한 정당이 정책으로 승부하기를 바라지만, 항상 선거에서 쟁점은 정책이 아니다. 이번 선거 역시 야당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문제, 현정부 심판론을 주요 이슈로 들고 나왔고, 여당은 나꼼수의 ‘김용민 발언’을 중심으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언론에서 정책 대결은 없고, 지역적으로 인물대결이나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우리의 선거문화다. 


이러한 가운데 또 다시 한미FTA 문제, 제주해군기지, 4대강사업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은 쟁점이 되어보지도 못한 채 묻혀갔고, 결국 한미FTA 체결에 앞장선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재오 전의원이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영광을 제외하고 고리, 월성(경주), 울진 등 핵발전소 후보지에서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삼척, 영덕(울진과 같은 지역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광의 경우에도,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하였지만, 그는 핵발전소 폐기를 지지하느냐는 시민사회단체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아 사실상 탈핵후보라 보기 힘들다. 전국적으로도 탈핵열풍에 힘입어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녹색당은 0.48퍼센트라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녹색당과 함께 2030년 탈핵을 제기하며 선전한 진보신당의 경우에도 1.13퍼센트 지지율로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1주기를 맞아 점차 높아지는 탈핵의 열풍으로 총선 승리를 기대했던 꿈은 너무나 냉정한 한국정치의 벽 앞에 산산히 조각난 것이다. 선거는 정책과 기획력이 아니라, 조직력과 후보 인지도로 승패가 갈라진다는 정치공학법칙에서 아직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거품은 꺼지고 땅은 굳어야 한다

너무 냉정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반핵운동진영의 총선 실패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고 본다. 사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반핵운동진영은 자신의 역량보다 과대평가 받아왔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국민들이 핵문제에 관심을 갖고 탈핵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순수하게 반핵운동진영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엄청난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와 그 지역의 주민들이 온몸으로 전달했던 메시지와 사실의 힘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반핵운동진영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계속 옮겨온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 이웃나라에서 벌어졌기에 굳이 반핵운동진영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핵 없는 세상을 자신 스스로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가들조차 어떤 반핵 행사가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반핵운동의 범위가 넓어짐을 의미함과 동시에 다양한 이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태가 됨을 의미했다.


바꿔 말하면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모든 일들은 반핵운동진영이 기획하고 조직한 활동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4.11총선을 통해 반핵운동진영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많은 일들은 이후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든든한 모래알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단단한 기둥도 아니고, 반핵운동진영의 성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예민한 총선시기에 그 성과를 확인하기는 더욱 더 힘들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반핵운동의 모범사례라고 이야기하는 독일조차 1970년부터 반핵운동이 본격화되었지만, 정치적인 변화를 경험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그 사이 수천~수만 명씩 모이는 대중 집회 등을 통해 대중운동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핵발전소는 가동중에 있고, 반핵운동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무시한 채 불과 1년 동안 소기의 성과와 탈핵까지를 상상했다면 이는 그야말로 ‘성질 급한 한국사람’의 전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탈핵은 이루기 힘들고 더욱 큰 대중운동으로 반핵운동이 발전할 때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기본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겨우 수천 명 규모의 자발적인 집회를 처음 경험해 본 반핵운동의 햇병아리 국가다. 1980년대 이후 반핵운동이 계속 이어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은 마치 소수의 인간문화재가 ‘명맥’을 이어오듯이 맥이 끊기지 않을 정도의 활동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겨우 그 단계를 넘어 더 넓은 광장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대중운동의 시작, 

그것이 유일한 답이다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은 몇몇 전문가들이 정치인들에게 정책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고 이뤄질 수 없다. 소위 핵마피아라 불리는 이해 집단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정부의 자원과 시간을 핵발전소에 쏟아붓고 있는 한 결코 에너지 시스템은 변경될 수 없다.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거리-대량수송 중심의 전력시스템이 안착화됐을 때, 소규모 분산형 시스템인 재생에너지는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핵에너지와 재생에너지는 양립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설명해왔고, 이는 이미 탈핵을 선언한 많은 나라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핵없는 세상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방법은 탈핵을 염원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은 일본의 경우, 정치권과 전력산업은 자신의 이권에 따라 핵발전을 계속 지속시키려고 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거대한 반핵흐름이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대중운동의 힘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4.11총선을 마치고 한국반핵운동은 이제 새로운 전략을 짜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몇몇 운동가들의 몫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핵발전을 보기 싫은 모든 국민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이 전략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당장은 총선 실패를 통해 실망감과 아픔을 겪고 있지만, 이 전략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핵 없는 미래란 없을 것이다.


이제 거품은 꺼졌고, 땅은 내린 비로 진창이다. 이 불안정한 대지 위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핵발전이 위험하다는 것과 핵발전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화하거나 바꿀 수 없는 진실이다. 가장 낮은 현실이 오히려 진실의 방향을 더욱 견고하게 일러준다. 다시 탈핵의 우보행을 펼쳐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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