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0] 특집 핵발전/ 체르노빌의 긴 그림자 / 닐 싱클레어

특집-핵발전, 되풀이되는 악몽

체르노빌의 긴 그림자
닐 싱클레어/반핵운동가
문진미 옮김


1986년 4월 26일, 구소련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했다. 세계의 이목은 수개월 동안이나 이
끔찍한 사고의 뒷수습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13년이 지난 1999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은 더 이
상 언론의 헤드라인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나라는 더 이상 존
재하지 않는다. 냉전시대는 끝났고, 소비에트연방의 국가들은 굉장한 경제혼란에 봉착해 있
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재앙은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 우트라이나, 벨라루스 등의 나라는 사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당한 방사능낙진에 피
폭당하고 있다. 특히 벨라루스 영토의 23%는 극심한 방사능 오염으로 더욱 피폐해져 갔다.
방사능오염은 점점 확산되고 있으며 거대한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극심한 피폭과 위험한
수위의 방사능 농도는 그 지역들을 폐허로 만들었고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도 몇몇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다.
1998년 8월 나는 독일의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벨라루스를 여행했다. 동행한 사람들은 몇몇
학생들과 태양에너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던 이들이었다. 우리가 돌았던 민스크 인근 지
역 곳곳은 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비록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안다하더라도 연기가 자욱한 공기를 보는 것은 사실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토양내의 방사능이 식물에 흡수되고 그 식물들이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할 때 방사능이 다시
대기중으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민스크는 2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그곳은 방사능 낙진에서 벗어난 지역이기 때
문에 그동안 그래도 ‘깨끗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식량공급원은 결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곳이다. 벨라루스 정부는 식품의 방사능 오염 단계를 법적 기준으로 제한하
고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은 서방국가들에 비하면 아주 높은 것이다.
민스크에 있는 동안 나는 방사능 안전협회 등을 방문했다. 그곳은 방사능 낙진의 영향에 대
해 다루는 독립단체였다. 그들은 아이들의 신체에 대해 방사능 농도 측정하고, 아이들에게
체내의 방사능 활성화를 억제하는 ‘펙틴’이라는 알약을 나누어 주었다.
민스크에서부터 고멜시의 남쪽까지 여행하였는데, 고멜시은 인구 70만의 도시이며, 체르노빌
에서 1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물론 고멜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이다. 고멜시는 방사
능 오염정도에 따라서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우리는 그곳에서 도시내의 방사능농도가
높은 곳에 자리한 한 청년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런곳에 교육기관이 있는지 질
문하였다. 하지만 옮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다는 추측성 답변이 고작이었다.
도중에 우리는 사고로 인해 주민들이 모두 이주한 텅빈 지역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의 독
일인 동료는 이미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벨라루스
사람인 안내원과 나만 체르노빌을 등에 지고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물론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이 목적지였다. 그곳은 세슘 137, 스트론튬 90과 그보다 적은 양이긴 하지만 플루토늄
239 등이 측정된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반감기가 아주 긴 플루토늄으로 오염되었고 이미
죽음의 땅으로 불리는 곳이다. 아마 수천년 동안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
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 달렸을까. 우리는 목초가 펼쳐진 한 농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말 풍
성한 경작지였다. 물론 이곳은 사람이 살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사능으로 심각하게 오
염되어 있는 곳이다. 소들은 이 풀을 먹고 아이들은 또 그 소에서 생산한 우유를 마시게 된
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체내 면역력이 떨어지고 암발생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는 방사능 물질인 스트론튬 90이 함유되어 있었다.
텅 비워진 죽음의 들판에 가까워지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목적지에 이르러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그곳이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싱싱한 풀
들이 있었고 우리가 지날 때마다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인간이 파괴하고 버린 곳에 자연이 슬며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
다.
우리는 예전에는 아주 평화로웠던 한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한때 5백여명이 살고 있었던
곳이지만 사고 이후 수십만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 마을 사람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이
곳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며 집들은 물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사람들이 다시
마을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집들을 완전히 철거했다.
우리는 뼈대만 남은 엉성한 집 한 채가 서 있는 곳에 차를 멈추었다. 방사능을 측정해 본
결과 고멜시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아늑한 뒤뜰, 잘 가꾸어졌을 정원, 정말 아름다운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밤, 이 평화로운 땅의 지붕들 위에는 스트론튬90과 세슘137 등 죽음의
재가 하염없이 내렸을 것이다. 정말 안타깝고 비통한 기억이다.
우리는 다시 사고전 이 일대의 생활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들어갔다. 큰빌딩이 한 채 남아
있었다. 우리는 마치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듯한 죽음의 도시를 지나온 것처럼 참
으로 공허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끔찍한 죽음과 기형, 강제이주, 방사능에 오염
된 땅, 파괴된 건물만 덩그렇게 남게 될 핵전쟁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는 오염된 지역을 뒤로 하고 외곽도로로 빠져나왔다. 조금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
안내원은 신발바닥의 방사능을 측정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방사능을 옮겨오고 말
았다.
체르노빌 핵사고의 재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억은 희미해지겠지만 고통은 계속될 것
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암과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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