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맑은 물

맑은 물
                        정현종


맑은 물을 얻지 못하면 산다고 할 수 없다
-소로우 『저널』

맑은 물이여
우리가 아침 저녁
마시는 물을 위하여
곡식과 채소
과일들의 즙을 위하여
맑은 물이여
구름의 운명을 위하여
비와 눈
풀잎과 이슬
곤충들의 갈증을 위하여
우리의 전설
모든 시냇물을 위하여

 


도도한 피
강물
우리와 함께 헤엄치는
물고기들
그 번쩍이는 발랄한 도취를 위하여
구름의 고향 바다를 위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위하여
맑은 물이여
우리의 영혼이 샘솟기 위하여
산 것들의 힘이 샘솟기 위하여
지구의 눈동자
맑은 물이여
거기 비치는 해와 달
그리고 나무들을 위하여
새들의 노래를 위하여

- 시집 『세상의 나무들』(문학과지성사, 1995)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일찍이 공자는 군자(君子)의 사귐은 맑은 물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의 군자란 지식인이나 벼슬아치를 일컫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군자의 도리를 ‘인(仁 )’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바라보고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귐을 맑은 물에 비유한 것은 구태여 부패한 공무원과 영리에만 급급한 장사치의 뇌물로 맺어진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깨닫게 해주는 일이 많다. 그 중에서도 어진 마음을 맑은 상태로 규정하는 가르침이 이끌고 나가야할 현실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은 맑은 물의 속성이 자연의 모든 생명력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감당한다고 노래한다. 생명력이 충만한 자연의 현실은 맑은 상태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때도 눈이 맑은 사람을 가장 순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려고 한다. 고요한 산사나 수도원에서 영혼의 깊이를 탐구하는 수도승의 눈빛이나 어린 아이의 눈빛에서 우리는 그렇게 순수한 성품을 찾아낼 수 있다. 시인은 “우리의 눈을 위하여 / 맑은 물이여 / 우리의 영혼이 샘솟기 위하여”라고 그러한 이치를 노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순수한 성품은, 순수한 영혼의 가치는 “산 것들의 힘이 샘솟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인이 마침내 맑은 물을 “지구의 눈동자”에 비유했을 때 우리는 살아있는 자연의 모든 생명을 돌아보는 어진 마음과 자연의 모든 생명을 비추어주는 맑은 물이 일치되는 현실을 누리게 된다. 맑은 물에 비치는 해와 달과 산과 나무들, 그 아름다운 자연의 현실을 맑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지켜내는 군자들이 이 시대에는 많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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