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반달곰이 사는 법

반달곰이 사는 법

 

송찬호


지리산 뱀사골에 가면 제승대 옆 등산로에서 간이 휴게소를 운영하는
신혼의 젊은 반달곰 부부가 있다 휴게소는 도토리묵과 부침개와 간단한
차와 음료를 파는데, 차에는 솔내음차, 바위꽃차, 산각시나비팔랑임차,
뭉게구름피어오름차 등이 있다 그중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것은 맑은
바람차이다

 

부부는 낮에는 음식을 팔고 저녁이면 하늘의 별을 닦거나 등성을
밝히는 꽃등의 심지에 기름을 붓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독여주곤 한다

 

그런데, 반달곰 씨의 가슴에는 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일전에 반달보호협회에서도
찾아왔다 그대들, 곰은 이미 사라져갈 운명이니 그 가슴의 반달이나 떼어
보호하는 게 어떤가 하고,

 

돌아서 쓸쓸히 웃다가도 반달곰 씨는 아내를 보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산열매를 닮아 익을대로 익은 아내의 눈망울이 까맣다 머지않아 아기 곰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는 하늘을 아장아장 걷는 낮에 나온
반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험한 산비탈 오르내리며 요즘 반달곰 씨는 등산 안내까지 겸하고 있다
오늘은 뭐 그리 신이 나는지 새벽부터 부산하다 우당탕 퉁탕……, 아이쿠
길 비켜라, 저기 바위택시 굴러 온다

 

-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지리산에 반달곰이 방사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이한다. 2001년 9월에 새끼 반달곰 4마리가 방사된 이래 모두 19마리의 반달곰이 지리산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산 반달곰을 지리산에서 살게 하는 사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서 밀렵꾼들이 설치해놓은 올무에 걸려 죽거나 야생 적응에 실패하고 다시 우리에 갇힌 반달곰도 있었다.


지리산 뱀사골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를 “반달곰 부부”라고 부를 만 한 까닭은 지리산의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들이 “저녁이면 하늘의 별을 닦”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독여주곤 한다”고 노래한다. 지리산 자연에 대한 사랑은 순탄한 것만이 아니라서 “반달곰 씨의 가슴에는 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밝힌다. 실제로 반달곰을 보호하는 일을 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다친 것인지 마음을 크게 다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느 쪽이든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손길이 자연을 보호하는 인간의 손길보다 크고 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다. “곰은 이미 사라져갈 운명이”라는 단정을 내려버린 “반달보호협회”의 입장은 그러한 실감을 더욱 강화한다. 그렇다면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손길을 이겨내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인은 생명에 대한 사랑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듯하다. 인간도 동물이며 모든 동물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가장 강력한 생명의 본능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아기 곰이 태어나는 것”을 예감하는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예로부터 도교에서는 삶의 가장 큰 이치를 ‘덕’에서 찾았고, 덕의 가장 깊은 본성을 ‘천진성’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생명의 천진성을 기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긴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자연은 삶의 천진성을 기리는 동화,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늘을 아장아장 걷는 낮에 나온 반달”은 지리산의 반달곰과 인간의 반달곰을 하나로 이어주는 생명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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