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30] 그의 말

그의 말

천양희


산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숲을 말하고
숲에 대해 물어보면
먼저 새를 말하고
새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울음에 대해 말하고
울음에 대해 물어보면
먼저 물에 대해 말하고
물에 대해 말하다보면
어느새
산 아래 내려와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저 나무들에게 들으시기 바란다*

* 법정 스님의 말에서

-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사, 2005)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텔레비전의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이 늘 서늘해지는 장면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들이 한 집에 오순도순 모여 사는 모습이다.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별다른 반찬도 없이 부족한 음식을 나누어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짜증과 원망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들은 조용히 자신에게 나누어진 음식을 정성스럽게 먹는다. 나는 그러한 자족과 평안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자신만 돌아보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기보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존중하고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는 마음이 물질의 결핍을 보상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산”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도 이러한 존재의 관계를 소중하게 살펴본다. 구태여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연의 모든 존재는 외따로 스스로의 가치를 내세우거나 보여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인연을 맺고 있는 자연의 이치를 캐다 보면 인간은 스스로 무시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삶의 깊은 속성과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그러한 발견의 이치가 겸손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산에 대해” 따져보기 위하여 “산”을 찾는 마음이 “산”보다 작은 지체들끼리 어울리는 존재 이치를 살펴보는 마음으로 나아가다가 “어느새/산 아래 내려와 있”는 마음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손함으로 나아가는 과정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관계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다. “울음”에서 “물”과의 관계를 찾아내고, 마침내 “산 아래 내려와 있”는 마음을 찾아내는 이치가 그렇다. 그리고 겸손함과 근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어울려 마침내 생명의 찬미에 이르는 결과를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눈부시게 피어나는/저 나무들에게 들으시기 바란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존재가 서로 맺는 인연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의 “산”에서 존재들끼리 어울리는 생명의 소중한 인연을 찾아내고 기리는 마음을 가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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