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읽기 27] 허물

허물

정호승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 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 시집 『포옹』(창비사, 2007) 중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다 저의 허물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허물’이라는 말은 그때 ‘잘못’이나 ‘흠’을 뜻한다. 
‘허물’이라는 말이 ‘껍질’이라는 다른 뜻도 함께 간직하고 있는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알맹이가 없고 거죽만 남았으니 실속이 없다는 점에서 
‘허물’이 좋은 뜻을 간직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속담에서 엿볼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허물’은 갖고 있을 따름이다. 

정호승 시인은 그러한 ‘허물’의 존재 가치를 다르게 생각해본다. 
실제로 시의 내용이 그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잘 떨어지지 않는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런 속성의 놀라운 존재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서 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어머니의 알맹이에 속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자식에게 모든 생명력과 사랑을 주고 껍질로 남은 어머니의 존재를 
시인은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 모습에서 찾아내고 있다. 
마치 걸레처럼 마루에 납작 엎드려있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모성의 가치를 읽어내고 싶은 것이리라. 

우리는 이러한 ‘허물’의 존재 가치를 인간에 대한 자연의 모습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인간에게 좋은 주거환경과 먹거리를 제공해주면서 
스스로는 점점 황폐해져가는 지구야말로 또 다른 ‘허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공해물질을 자연의 정화능력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지구의 모습 또한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 어머니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식들은 가슴을 치면서 자
신의 무관심과 잘못을 후회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과 후회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처럼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어머니 자연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경호 문학평론가, 『문학의 현기증』 저자 leekh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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