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44] 어떤 아이 이야기

 
나는 음식을 버릴 때 죄책감을 느낀다. 음식을 장만해준 사람이 아니라 굶주린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죄책감이다. 누군가에게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음식이 내겐 그저 남아돌아 버리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낀다.
 
처음부터 적게 먹겠다는 마음과 실천이 있었다면 느끼지 않았을 괴로움이다.
 
얼마 전, 청소년 소설집에 그림을 그렸다. 표지만 그리는 작업이라 출판사에서 보내준 원고를 대충 속독할 생각이었는데 끝까지 정독했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 배고픔과 폭력을 견디는 소년이 나온다. 소설의 결말은 참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이 소년에게 닥친 불행 중 나의 마음을 강하게 흔든 것은 역시 배고픔이다.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작고 여린 소년의 굶주림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뒤져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그 동안 생각 없이 먹는 행위를 한 내게 경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명이 있는 우린 먹어야 하고, 먹어야하는 우린 생각해야 한다. 먹는 행위가 절제를 상실하면 우린 다른 생명을 끊임없이 탐할 수밖에 없고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읽은 소설 속 소년에게 작은 물고기 친구가 있다. 극한 상황에서도 소년은 물고기의 먹이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은 소년이 대견하며 동시에 안쓰럽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은 공장식 사육으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고기’로 태어난 줄 안다. 돼지와 소도 먹는데 개는 왜 예외냐고 묻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얼핏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공장식 사육이 주는 폐해와 육식의 적정선을 정하는 일은 인간에게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야생동물처럼 육식동물인지 채식동물인지 정해졌다면 편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다. 생각하는 존재에게 먹는 행위 하나에도 사유가 필요하다면 우린 기꺼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오늘도 난 버려질지도 모르는 음식물을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날마다 죄를 짓고 그 죄를 안고 죽는 게 인간이라지만 음식을 버릴 때마다 느끼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먹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하는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난과 노동이 가려진 요즘 굶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린 이제 그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닐지.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샤먼 앱트 러셀 『배고픔에 관하여』 중에서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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