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52]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친구들 사이가 두 패로 의견이 나뉘었어요. 빨리 집에 가자는 쪽과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가자는 쪽으로.”
 
농촌에서 유년을 보낸 편집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논으로 들로 쏘다니며 놀던 친구들이 해가 지고 날이 추워지니 고민에 빠졌단다. 서둘러 집으로 가자는 쪽과 쉬엄쉬엄 가자는 쪽으로 말이다.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편집자는 장작불에 몸을 데우고 쉬엄쉬엄 가자는 쪽이었다고 한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는 순간은 잠시나마 따듯했는데 일어나 걸으려니 다시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고. 몸을 떨며 먼저 떠난 친구들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그날의 기분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 후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고 싶었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길을 단축하기 위해 택시를 타거나 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때로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아 당장 필요 없는 생필품을 사기 위해 동네 마트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별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시 생각하면 일상은 대부분 색다른 감정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무감각이나 무의미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당연히 이뤄지는 일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까울지 모른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에 큰 의미나 의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의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천천히 돌아오는 사람과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모두 당연하게 돌아올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은 특별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집을 잃고 길을 떠나는 난민들의 마음속에 다시 돌아갈 집의 형태는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세상에 많은 비극의 짐작은 불필요한 연민이니까. 
내게 유년의 기억을 들려준 편집자와 새로운 책을 만든다.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 내가 그림을 그린다. ‘권정생’이라는 거목의 문장에 미숙한 나의 그림이 함께 자리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살아서 그림을 그리는 기쁨 중 좋은 이야기와 함께 하는 일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좋은 이야기를 남겨주신 선생님께 미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복숭아나무에는 임자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배가 고프면 한두 개씩 따먹습니다. 더욱이 나무 아래에서 맑은 샘이 흐르기 때문에 나그네들은 곧잘 이 복숭아나무 밑에서 쉬어 가는 것입니다.” -권정생 ‘눈이 내리는 여름’ 중에서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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