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56] 우리가 우리를 만나

 
육아휴직을 미치고 복직하는 친구에게 가방을 보냈다. 감각이 꽝이라 고르는데 애 좀 먹었다. 4년 동안 함께 그림책 만들면서 많이 울고 웃으며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쌍둥이 영유아를 동반하고 외출할 때 물을 마시면 공중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과 아이들과 마을버스를 탈 수 없는 현실과 어린이집 퇴원시간 전까지 주어진 짧은 자유. 공감 능력이 별로 없는 나에게 이해와 오해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 친구를 만나고 알았다.
 
육아가 힘들고 복직도 걱정이란 친구에게, 다들 어렵게 산다는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던 나인데, 요 며칠 마음이 허전하다. 정이란 게 무섭다. 한 사람이 몰고 온 세상이 참으로 거대하다는 사실 뿐이다.
 
‘음퐈음퐈’ 몇 번 하고 수영장은 또 휴관이다. 척추염 때문에 억지로 하는 운동인데. 수요일 글공부도 어찌 될지 모르겠다. 올 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자고 약속한 복지관 장애 여성들은 만나서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한 상태다. 
 
취약계층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전염병 그 전염병보다 더 지리멸렬한, 생각을 멈춘 사람들.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부터 저들과 다른 길을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강연 시작 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오랜 구직활동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는 전화였다. 취업 축하한다고 말했더니 느닷없이 펑펑 운다. 내 말이 고마워서 운 게 아니라,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느낀 불안과 우울함이 터져 나온 거 같다.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존감 때문에 내게 연락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사실 진짜 미안한 사람은 나다.
 
젊은 친구라 좀 기다리면 어떻게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젊은 날 내 불안과 닮은 혹은 더 가혹한, 오늘을 견디는 젊은 친구들 모두 건투를 빈다. 내 부업이자 작은 꿈은 사람들과 모여 책 읽고 글 쓰고 수다 떠는 거다. 운이 좋아 도와주는 분들도 많아 5년 동안 이 일을 이어왔다. 오늘 수업하면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도 이유겠지만, 계속되는 비상식적인 돌발 상황이 내 작은 바람을 자꾸 꺾는다.
 
나는 그토록 원하던 채식주의자는 되지 못했고 이기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었다. 혼자 평온하게 살고 싶었는데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그래서 읽고 쓰고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그나마도 어려워지니 속이 시끄럽다. 이런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담스럽고 애잔하다.
 
아, 예상 밖의 미래는 달나라에서 저녁 먹는 미래가 아니라, 몰상식을 상식으로 믿는 저들이 만든 미래였다. 육아에 지친 몸을 끌고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의 지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나의 각오를 김애란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 김애란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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