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58] 보이지 않는 폭력

 
함께 공부하던 분이 얼마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본업인 주민센터 공무원으로 복직하셨다. 
 
어느 날 다급한 민원전화를 받았는데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혼할 예정인데 남편이 등초본을 조회할 수 있는가, 라는 문의였다. 
 
가족은 주소가 달라도 등초본을 조회할 수 있다고 답했더니 민원인은 낙담했다고. 그런데 순간 번뜩 가정폭력피해자 예외 법안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교육청에 문의해 주겠다고 민원인에게 안내하셨단다.
 
여성긴급전화와 교육청 비밀전학제도 등등을 대신 알려드렸고, 이후 폭력 남편이 피해 가족의 등초본을 열람할 시,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 ‘가정폭력피해자입니다. 등초본 열람이 제한됩니다’라는 팝업창이 뜨게 되었단다.
 
나와 함께 공부하던 분도 과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경험이 있고 내가 그린 김흥식 작가의 그림책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를 좋아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면서 내가 만든 책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세상은 이깟 책 한 권으로 변할 리 없는데 희망이란 단어를 함부로 꺼내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현실은 언제나 비정하고 복잡하니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민원인의 전화를 차근히 응대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 해마다 늘어나는 실정에서 현행법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만약 민원인의 전화에 아무 감흥 없이 응했다면 가정폭력보다 더 무서운 미래가 기다리지 않았을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매주 나에게 복직일기를 써서 보내주신다. 
지난번 온 복직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두텁고 커다란 손으로 엄마를 세면대 바닥에, 옥상 계단에 힘없이 부딪히고 쓰러지게 할 때,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보기만 하던 내가 떠올랐다.” 
 
함께 공부할 때 유년시절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엄마를 돕지 못한 자책의 글을 종종 쓰셨던 게 기억난다. 가정 내 이뤄지는 폭력은 외부로 드러나기 어렵다. 폭력의 상처는 인간 내부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폭력에 둔감한 사람으로 타인에게 감응하기 어려운 소통 장애를 남길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나의 지인은 그 반대로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세심한 배려를 보낸 거다. 직장 내 동료들로부터 바쁜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핀잔을 들었지만, 본인은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한다. 
 
이제 어른이 된 당신은 어린 당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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