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59] 보이지 않는 폭력

 
한 해가 저물어요.
 
저무는 해를 볼 때마다, 아니 느낄 때마다 아쉬움이 커요. 현진 씨가 보내주신 바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계절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현진 씨를 알게 된 건, 내 책이 즐비하게 꽂힌 현진 씨의 책장 사진 덕분입니다. 
 
나는 책값을 정할 때 너무 비싼 건 아닌가,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현진 씨가 보내주신 내 이름이 적힌 책들을 보니 그 질문이 다른 질문으로 변합니다. 이 책은 모두 값을 하고 있는가?
 
이제 절판되어 내게 없는 책도 현진 씨는 갖고 있었죠. 왜 같은 책이 두 권이나 있는지, 절판도서는 어디서 사셨는지, 묻지 못했어요.
부끄러운 마음은 접고 오로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 책값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잠시 결심했다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언젠가 나는 독자에게 실망을 줄 때도 있을 테니까.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는 편이 후회가 적겠다 싶습니다. 앞으로 이상하고 후진 걸 만든다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디 책뿐일까요? 현진 씨가 보여준 팬심은 그림으로 이어졌죠. 제 그림을 사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고 사실은 많이 망설였답니다. 그냥 드리고 싶었거든요. 올해 현진 씨를 만나 내게도 열혈독자가 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책 한 권 출간할 기회도 쉽게 오지 않던 저에게 열혈독자가 있다고 말이죠. 
 
사람들이 가끔 제게 그림값 좀 올리라고 채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가격을 올리고 싶지도 내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이 있다면, 내 첫 작업실 월세금을 받고 싶습니다. 내 처음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현진 씨에게도 그 금액을 받았어요. 현진 씨가 내 작업실 월세를 알고 있는 사람, 내 꿈을 응원하는 사람, 바로 우리가 친구가 된 거라고 믿고 싶었거든요. 
 
요즘 부쩍 힘에 부치고 지칩니다. 아마 현진 씨도 그러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험과 저물어 가는 한 해가 주는 회한이 우릴 힘들게 합니다. 내가 쓰고 그린 그림책 『가드를 올리고』에 ‘오늘을 사는 당신에게’라는 헌사를 넣었지만, 실상 나 자신은 잘 다독이지 못합니다. 대신 그림으로 현진 씨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우리가 친구라고 말입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아시죠? 예술가에게 진정한 힘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걸. 
 
봉산 아래 사는 친구 정순이가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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