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61] 새해

 
내게 작은 능력이 하나 있다. 내다 팔아도 500원도 받지 못할 능력이지만.
 
시지각 능력이 좋다는 것. 다시 말해 공간과 사물의 유사성과 차이를 쉽게 구분한다. 눈을 돌려 사방을 살피지 않아도 대충 형태를 기억하기도 한다. 보통 시지각이 좋으면 학습 능력이 좋다는데 나는 어째 따로 노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매우 긴 시간 이렇게 살았으니 그냥 원인불명인 걸로.
 
그래서 이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을 나는 어디에 쓰는가 하면 어색한 자리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빨리 발견하고 피하는 데 쓴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분별하는 데 쓰이는 이 이상한 능력은 대체로 편견과 선입견을 조장할 뿐, 세상 쓸모없는 능력이다.
 
사람을 바로 보고 겪어내는 일을 수고롭게 여겼던 이유가 바로 이 시지각 능력 때문이다. 때로는 둔한 감각이 많은 걸 수용한다. 뒤늦게 알고 반성하는 능력도 하나 추가해야겠다. 
 
언젠가 동료작가의 글을 읽고 살짝 충격 받은 적이 있다. 나보다 띠동갑 어린 친구인데 첫인상은 재미없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재치 있고 따뜻했다. 
 
첫인상 그대로 판단했더라면 아마 그 귀한 글을 읽지 못했을 거다. 멀리 보면 내게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 글을 읽으며 예전 선배가 생각났다. 선배가 ‘나는 이제 뒷방 노인네야’라는 말을 하면, 겸손도 작가의 덕목 중 하나인가 했다. 
 
나는 나이가 들면 남들이 말하기 전에 미리 뒷방에 가서 앉아있을 거라고 했는데, 어리석은 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아무나 뒷방에 앉을 수 없다는 거. 가끔 무신경한 사람들이 ‘그 작가 한물갔지’ 할 때가 있다. 거대한 변화 속에서 뒷방에 앉을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있을 곳을 내가 정할 수 없는 날이 올 거다. 유명세를 떠나 이건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아무것도 없던 상태로. 
 
비교 대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현상은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는 동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자신도 함께 본다. 신기하다.
 
나의 부족함은 나중에 따져 묻고, 동료작가들의 무한하고 다양한 능력을 보면 한국 그림책은 내가 사는 동안 끄떡없을 것 같다. 한국 그림책의 백 년 먹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웃기긴 하다만, 든든한 동료가 있어 좋긴 좋다. 모국어로 보는 그림책을 더 깊고 넓게 여행할 생각을 하니 내 한 줌도 안 되는 능력은 잠시 잊는다. 새해에 나올 멋진 작가의 작품을 응원한다. 더불어 사람을 한눈에 보고 판단하지 말길 스스로 다짐한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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