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62] 시간을 담은 물건

 
내게 냄비가 두 개 있다. 엄마가 혼수로 장만해주신 냄비인데, 무겁기도 하고 쓰기도 불편해 가끔 버리고 싶은데 꾸역꾸역 5년째 쓰고 있다. 엄마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꼬박꼬박 혼수로 살림살이를 장만하셨다. 목화솜 이불은 지난 작업실에서 8년 버티다 버렸고 프라이팬도 작년에 결국 운명했다. 엄마는 막내딸의 혼수가 한참 유행 지난 구닥다리가 되는 것도 모르고 나의 짝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며 무럭무럭 늙고 있을 거라 믿으셨다.
 
이 두 냄비가 엄마가 물려주신 마지막 혼수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엄마의 마음마저 저버리는 것 같아서다. 버리는 대신 저들을 그림책 주인공으로 만들 예정이다. 
 
친구가 사준 새 운동화를 신고 식당에 갔다. 식당 구조상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문을 닫기 때문에 누가 내 새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도 모르고 식사에 열중했다. 밥을 먹을 땐 멍멍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내 잘못은 식사에 몰두해서가 아니라 아끼고 아끼다 하필 딱 그날 꺼내 신고 갔다는 데 있다. 아끼다 뭐 된 거다. 
 
사라진 새 운동화가 아쉬워 따로 새 운동화를 사지 못 했다. 적절한 시기에 다시 사겠지만 그래도 전에 운동화보다 예쁠 것 같지 않다. 아쉬움이 커서 식당 주인이 준 낡은 슬리퍼가 못생겨 보인다. 물건은 용도에 맞게 시기에 맞게 사용해야 그 값어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태어난 물건을 아쉽고 아까워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절반쯤 그 용도를 빗겨나, 쓸모를 잃게 된다. 쓸모를 잃게 된 물건은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물건의 용도를 살짝 지우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보고 싶다. 누군가 어떤 마음을 담아 나에게 보내준 적절한 시기에 대단히 쓸모 있는 물건이 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읽히면 물건은 물성을 떠나 소중한 내 것이 된다. 형태는 사라져도 마음은 남는다.
 
엄마의 철 지난 혼수와 도둑맞은 운동화를 생각하면서 나름은 변명 아닌 변명을 찾고 있는 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포장한 미안한 인사가 아닐까 싶다.
 
내가 만드는 책도 세상에 나가면 하나의 물건이다. 이 물건은 희한하게도 (나무에 미안하지만) 많은 양을 소유한다 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적은 물건이다. 이사할 때 느끼는 번거로움을 제외하며 대체로 사랑받는 물건이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든 물건이 누군가에게 적당한 시기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불가능한 꿈을 꾸는 나란 사람.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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