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67] 일상의 문장

 
동네 청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할 때 일이다. 청년들 모두 지역아동센터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라 서로 애틋하다. 그들은 대부분 가정폭력 피해의 경험이 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들이 작곡한 음악에 노랫말을 쓰고 싶어 날 찾아왔다. 나의 촌스러움이 그들에게 부스러기만 한 도움이 되었을지, 돌아보니 후회가 많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를 한 줄도 외우지 못하는 내가 말이다. 나는 뭐랄까, 단풍잎을 시집에 끼워 넣고 가끔 열무김치에 소주를 마시는 유물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고 미리 걱정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오히려 그런 날 반겨주었다. 
 
창 하나 없는 지하 목공소에서 우리는 글공부를 시작했다. 청년들은 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들고 그 수익으로 음악 활동을 했다. 그들은 협동조합 조합원이며 정부 지원사업으로 문화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전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유년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청년이 되어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고 있었다. 혈연관계가 주지 못한 사랑과 이해를 나누는, 다시 말하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구들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지만 글로 만나는 ‘서로’는 낯설었던 그들. 몰랐던 사실과 진심 앞에서 하나씩 그들만의 문장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의 첫 소절이 이렇게 시작된다.
 
“사촌 언니 꿈에 우리 아빠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어요. 살아있을 때도 술만 마시면 동네 창피하게 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남의 꿈에 나와 귀한 잠을 방해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 꿈에 나오면 막 원망하려고 했거든요. 엄마랑 나 왜 때렸냐고, 일도 안 하고 술만 마시다 갈 거면 왜 태어났느냐고 따지고 싶었어요.”
 
건반을 연주하는 A가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며 울었다. 눈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들의 첫 번째 쉼표가 되어준다. 내가 동네 사람들과 글쓰기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본 문장부호가 아닐까 싶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엄마가 날 찾았어요. 어느 날 다정한 목소리로 생일이니까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엄마는 내가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 같아요. 집에 가면 한 번도 자고 가라고 말하지 않아요.” 밴드 리더이자 보컬인 B의 고백이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뒤 소년원 수감 직전에 지역아동센터 도움으로 선처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가슴이 답답한 날에만 축구를 한다. 심각한 공황장애와 자살 충동을 견디면서 이 청년은 꿈을 꾼다. 희망이 노래가 되는 꿈. 나는 그에게 노래 가사 하나를 써주었다. 마음을 대신 표현하는 가사를 쓰고 싶었는데, 새벽녘에 그가 부른 노래 데모 음원을 듣고 알았다. 대신할 것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나는 그냥 글 몇 줄 얹어주고 우쭐대고 있었다는 것을. 한 인간의 희망을 향한 의지를 나는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글로 쓸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것을 글로 쓴다고 잘난 척했지만, 결국 난 날마다 실패할 것이다. 오늘도 희망이 보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말줄임표만 나열하는 무능한 사람이니까.
 
청년들과 마지막 공부를 앞두고 나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처럼 무능한 보따리장수 말고 다른 대안이 생겼으면 오늘 만난 동네 청년들에게 희망을 보여줬을지 모른다. 내가 조금만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적절한 문장부호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과정을 노래로 남기고 그 과정이 서로를 담는 괄호가 될 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글・그림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