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72] 끝나지 않는 이야기

 
나는 중동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깊은 미궁에 빠지곤 했다.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전쟁이란 어리석은 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료작가의 신간을 접했다. 중동지역의 분쟁을 담은 조금 두꺼운 분량의 만화책이다.
 
작가가 직접 취재와 연구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복잡한 전쟁의 역사와 분쟁의 비극이 공존하는, 접근하기 힘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는 점에서 숙연해진다.
 
동료작가의 말로는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부채감이 늘 따라다녔다고 한다. 말 못 할 감정은 작가의 마음과 발을 움직이게 했고, 드디어 2014년 팔레스타인연대 사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간 팔레스타인 어느 마을, 담벼락이 부서진 집에서 작가는 어떤 여인으로부터 이 마을과 이 집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집 안 곳곳에 최루탄과 탄피들이 잔뜩 쌓여 있던 이 집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본격적인 만화 스토리의 기둥이 되었다고.
 
작가는 마을 집회에 참여하여 지독한 최루탄을 맛보며 만났던 사람들을 한 명씩 떠올린다. 평화를 위한 신념으로 병역 대신 감옥을 선택한 사람, 보안상의 이유로 가자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순교자가 된 자식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이 모든 비극의 주인공을 작가의 경험을 통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어리석고 잔혹한 선택이 전쟁의 시작이 되었다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연대를 꿈꾼다.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평화 그 자체가 된다. 전설은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기적에 가까운 현실이 된다. 잔혹한 전쟁 앞에서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인지.  
 
그 긴 여정에 한 작가의 곡진한 노력이 있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힘 앞에서 단절된 개인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예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나는 희망이나 평화 앞에 ‘기어이’라는 단어를 넣는 걸 좋아한다. 평화를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 평화는 기어이 먼 길을 돌아 우리 곁으로 올 테니까요.
 
한해가 다시 시작된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아직 새해는 오지 않았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제작년월: 

환경단체 소식

사이트 소개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뉴스&월간 환경잡지 입니다.

청소년 보호 정책

구독

구독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