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76] 어느 정치인의 5월

 
장애인이 자신의 이동할 권리를 발명하고, 이를 법제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이동해서 거리로 나와야 했던 것이다. 
-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중
 
몇 해 전 추석 명절에 ‘장애인도 고향에 가고 싶다’라는 인터넷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저상버스를 이용해 장애인도 고향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였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동안 그들은 고향뿐만 아니라 여행도, 출장도 마음껏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몰랐다는 말이 이토록 무지하고 무책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언제 그들의 이동권에 관심이 있었던 말인가? 나를 포함한 수많은 비장애인이 언제 그들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고 살았단 말인가? 그런데 나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 아무 장비 없이 망망대해를 건너는 일보다 어렵고,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다.
 
내가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오랜 지병으로 인해 때때로 누운 자리에서 화장실  조차 가지 못한 경험이 적지 않은 사람이다. 두꺼운 유리문에 적힌 ‘당기시오’라는 문구만 봐도 아픈 손목부터 감싸던 날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약을 먹으며 조금 나아진 몸으로 살고 있지만 나는 장애인 등록을 앞둔 장애인이다.
 
젊고 유능하다는(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정치인의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듣고 나를 책망했다.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무심한 사이에 온갖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또 몰랐다고 말하고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안심하며 살아갈 것인가. 장애인이 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는(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어느 정치인의 말 속에서 이 시대의 다른 그늘을 본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면서 ‘몇몇 있지도 않은 장애인 운전자’를 위해 비장애인 운전자가 감수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고 말하는 사람, 장애인석이 너무 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 장애인을 위해 쓰는 세금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그늘을 본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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