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월호] 수필/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김성동 소설가>

[수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

[월간환경운동 97/1월호]

◈ 김성동 / 소설가

제나 배가 고팠다.
내남적없이 가난하던 시절. 옥 같은 쌀밥에 고깃국은 정월 초하루 설날이나
한가윗날 차례를 지낼 때와 제삿날 밤에나 구경할 수 있었고, 언제나 보리밥
이었다. 그것도 온전한 보리밥은 드물었고 보리죽이 아니면 밀기울 버무린 것
이나 술지게미 그리고 쑥개떡을 먹었는데, 그나마도 형편이 못 미치는 먼산나
물로 연명하였으니,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였다. 점심이라는 것을 먹는 집이 드
물었다. 시늉일망정 아침은 일찍 먹었고 점심은 건너뛴 채로 서둘러 저녁이라
고 입매 시늉만 하고 나서 하마 배가 꺼질까봐 등잔불을 끈 다음 일찍 잠자리
에 들고는 하였다.
언제나 배가 불렀다.
봄이면 알도 배지 않은 칡뿌리를 뽑아먹고 송화가루를 받고 나물 캐고 논에서
자운영을 뜯고 길섶에서 삘기를 뽑거나 찔레꽃을 꺾어 먹었다. 여름이면 으름
과 다래며 개복숭아 아가배 오디버찌 뽀루수를 따먹었다. 논에서는 우렁을 캤
고 고동을 줍다가 싫증이 나면 둠벙을 막았다. 귀떨어진 바가지로 둠벙의 물
을 다 퍼내면 추라치에 붕어와 미꾸라지며 새우가 종구라기 가득 건져졌다.
유리처럼 맑은 개울물에서는 바짓가랑이를 무릎 위로 걷어올리고 반두질을 하
거나 단지를 엎어 고기를 잡았으며 참외서리 콩서리로 굴품한 속을 달래고는
하였다. 빠가사리나 모래무지 또는 송사리는 훌륭한 밥반찬이 되었고, 조심조
심 가만히 돌멩이를 들추고 잡아낸 가재는 아궁이 불에 구워먹었는데, 날개와
다리를 떼어내고 살짝 구워서 소금에 찍어먹는 잠자리와 함께 아이들이 맛볼
수 있었던 유일한 ‘남의살’이었다.

여름의 끝이면 또 밀밭으로 갔다
밀을 한주먹 가득 훑어 입에 넣고 한참동안 씹다가 두 손가락으로 잡아늘여서
얇은 미농지처럼 만든 다음 거기에 입술을 대고 빨아들이면 뿅뿅 하고 꼭 꽈
리 터지는 소리가 났다. 밀껌은 그러나 찰기가 부족하여서 한참을 씹다보면
이내 흐물흐물하여져버렸지만 아이들은 얹나 밀밭가를 맴돌았다. 그러다가는
다시 또 논으로 달려가고는 하였다. 그리고 “훠어이, 훠어이, 길나라비 훠어
이” 하고 새떼를 쫓는 시늉을 하면서 슬그머니 볏낱을 훑는 것이었다. 한주
먹 가득 볏낱을 훑어서 호랑에 넣어 걸어가며 손톱으로 한 낱씩 꺼내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 것이었다.
언제나 들려오던 음악소리였다
구새먹은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우거진 앞산 솔수펑이에서는 꾀꼬리가 울고
뒷산 오리나무숲에서는 또 뻐꾸기가 울었다. 오르고 또 오르되 종다리가 울어
대는 보리밭에는 메뚜기 방아깨비 사마귀 여치 풀무치 베짱이 찌르레기가 날
아다니고 맹꽁이가 자발맞게 울어대고 주먹만한 개구리가 곤두박질하는 웅덩
이 위를 맴도는 것은 보리잠자리였다. 뿐인가. 자욱한 는개가 비장만을 하던
한여름 해거름녘마다 들려오던 애장터의 애우는 소리에 힘도 내음도 없는 물
방귀만 뀌다가도 날만 새면 달음박질쳐 올라가 꺼내어보던 민탈의 물총새알이
었다.

죄 사라져버리었다
그로부터 어언 사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산은 이미 옛 산이 아니요 물도
이미 옛 물이 아니며, 그리고 그러한 산천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이미 옛사람들이 그토록 올곧고 참다웁게 지켜내고자 애를 태웠던 ‘조선의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것이니-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에 미
주알을 졸밋거리던 밤마다 눈물처럼 반짝이던 반딧불도 도깨비불도 그리고 여
우가 어슬렁거리던 애장터와 상엿집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참새떼가 씨가
말라가므로 들판에는 허수아비가 사라졌으며 이른바 ‘보양탕’으로 ‘싹쓸
이’를 하여가는 바람에 배암 또한 사라지고 있어 들쥐떼와 들고양이떼만 날
뛰고 온갖 수입 과자며 수입 실과에 중독된 아이들은 ‘서리’라는 말을 아예
영어·일어보다 모르며 밀밭마저 사라져버리었다.
봄이 와도 보리밭 위를 날아다니는 것이라고는 송장메뚜기밖에 없고 맹꽁이도
개구리도 보이지 않는다. 맹독성 농약과 화학비료에 다 죽고 미제 개구리 일
제 붕어가 다 잡아먹어 개구리도 물고기도 씨가 말라간다. 귀떨어진 쳇바퀴만
들고 논고랑을 흙어도 미꾸라지 우렁 붕어 새우 참게 고동 소쿠리 가득 건졌
건만 해동갑을 하도록 고랑마다 더듬어봐도 보름보기된 잔챙이 한마리 없고
농약과 비료에 범벅되어 시뻘겋게 독이 오른 모포기 사이로는 물땡땡이 물매
암이 맴을 돌지 아니하며 헤엄치는 물방개 소금쟁이 물장군 하나 없는 논배미
에는 캐어보고 건져내볼 그 무엇조차 없다.
산으로 가보지만 사정은 또한 마찬가지. 해마다 늘어나는 골프장과 스키장에
파먹히어 벌건 속흙을 드러내고 있는 사태난 산에서는 칡뿌리는 그만두고 삘
기 한줌 뽑아보기 어렵다.
뒷동산에는 해바라기하는 자고새 콩새가 없고 논두렁에서는 해동갑하는 티티
새 홍여새도 없는데 온 산을 다 뒤져봐도 고아먹을 무릇은 그만두고 잔대 더
덕 도라지 고사리 한뿌리 남아 있지 않다. 으악새숲을 헤쳐보아도 어지러이
날아오르던 개개비떼 보이지 않고 식전 아침부터 귀청이 떨어지게 울어쌓던
까막까치도 없는데 해가 거우듬하여지면서부터 울기 시작하여 이슬이 영그는
새벽까지 애가 끊어져라 구슬프게 울어대던 소쩍새도 뜸부기 소리도 끊어졌으
니- 고향은 없다.
고향이 없는 시대에 무슨 재주로 시를 쓰며 또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대재앙의 종말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을 뿐인 절망의 자동차 위에
서 무슨 서정이 나오고 무슨 전형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남은 것은 오로
지 ‘돈’일 뿐이니. 무엇을 어떻게 썼든지간에 많이만 팔리면 장땡인 세상이
다. 시에는 음악이 없고 소설에는 또 자연풍광을 그려내는 묘사가 없다. 모든
것을 오로지 물량과 속도로만 계산하는 이 가공할 ‘컴본주의’ 시대에 이 무
슨 한갓진 소리라는 말인가.
열다섯 장의 이런 새꼽빠지는 소리를 하기 위하여 이 중생은 또 몇그루의 소
나무를 없이하는 업을 짓고 있는가.
옴남 옴남 옴남.
(이 수필은 환경련 지도위원인 김성동 선생이 『창비문화』 11·12월호에 게
재한 것을 전재한 것입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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