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함께 안전한 생활화학제품’ 협약에 발 뺀 글로벌 기업들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함께 전 성분 공개 요구가 거세지자, 2016년 말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을 진행하고 있다. 생활화학제품 제조·수입업체와 자발적 안전관리 협약을 체결하여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의식을 높이고,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2017년 2월 환경부는 17개 기업과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체결한 기업은  협약기간(17.2.28.~19. 2.27.) 동안 소비자 안전을 위해 제품의 전 성분 공개 방안을 강구하고 자율적으로 제품 안전 관리지침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제품 성분 정보를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초록누리 ecolife.me.go.kr)에 공개하고 있다.  
 

1기 한계 넘어 시민사회와 손잡은 기업과 정부 

 
지난 6월 25일 제2기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식이 진행됐다. 이번 협약식에는 환경부와 19개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도 참여했다 ⓒ환경부
 
정부와 기업은 협약을 통해 전 성분 공개라는 한발 진전된 듯한 변화를 보였지만, 성분 공개 자체가 어떤 제품이 안전하고, 덜 유해한지 시민들이 제품을 판단하는 정보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초록누리 사이트에 공개된 제품의 전 성분을 보면 읽기도 어려운 화학 물질명으로 성분만 나열하고 있어, 제품 비교 정보나 안전 정보를 요구하는 시민들로부터 불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환경부가 진행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안전 정보 만족도 조사 결과 역시 87.6퍼센트가 불만족하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를 묻는 질문에 ‘안전한 사용 방법(36.4퍼센트)’과 ‘제품의 독성 정보(35.4퍼센트)’가 높았다. ‘제품의 성분 정보’는 14.6퍼센트에 그쳤다. 
 
또한 협약 이행과정에서 확인한 바, 기업이 자체적으로 안전관리지침을 마련해 제품의 원료를 관리한다기보다, 정부가 법적으로 규제하는 물질의 함유 여부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관리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환경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전 성분 공개뿐만 아니라 성분들의 유해성 정보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이 확인된 물질만 사용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난 6월 25일 환경부는 제2기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19개 생활화학제품 제조·수입·유통사가 참여한 이번 협약에는 환경연합과 환경정의도 참여했다. 1기와는 달리 시민사회를 당사자로 참여시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대한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협약 내용도 진일보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1기 협약이 제품 전 성분 공개에 방점을 두었다면 2기 협약(‘19.2~’21.6)은 공개된 전 성분의 안전성을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평가하기로 했다. 원료 평가 결과 유해성이 높은 물질로 확인되면, 기업 스스로 안전한 원료로 대체하거나 저감하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와 같이 호흡기 노출 가능성이 높은 제품의 원료를 우선 평가하고, 흡입했을 때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거나, 안전 정보를 확보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처럼 시민사회, 산업계, 정부가 합의체를 구성해 제품 원료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원료 평가 결과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다.
 
이번 협약에 상원상공(주), 에이제이(주) 등 중소기업도 참여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전 성분이 공개되면 제품 기밀이 유출돼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는 물론 영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은 전 성분 공개를 통해 제품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기업의 이미지 또한 향상되었다는 평이다. 시장 내 생활화학제품 전 성분 공개 문화가 확산하고 있고 자발적 참여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협약의 긍정적인 신호이다. 
 
이외에도 자율적 협약 세부 내용과 이행계획을 살펴보면 참여기업들은 기업 경영 원칙에 있어 안전관리를 최우선 원칙을 반영해 기업 스스로 제품의 표준 및 안전관리지침을 마련키로 했다. 또한, 협약에 참여한 유통사들은 안전한 제품의 판매 및 유통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고, 위반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구매처에서 손쉽게 교환이나 환불할 수 있도록 소비자 상담 창구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협약에 참여한 시민사회는 자발적 협약의 목적과 성과가 공유되고, 안전에 대한 시민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도록 사회적 소통을 위해 적극 역할을 할 계획이다.
 

제2기 협약에 빠진 다국적 기업

 
아쉬운 부분도 있다. 1기 협약에는 참여했던 다국적 기업들이 2기 협약에 빠졌다. 한국피앤지(P&G)와 에스씨존슨코리아, 헨켈홈케어코리아가 그들이다. 문제는 해당 기업들의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대해 전혀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독일계 다국적 헨켈홈케어코리아는 가습기 살균제 책임 기업이며 한국피앤지 역시 자사 제품의 흡입 안전성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기업인 에스씨존슨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판매 제품 원료 평가 기준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지속적인 원료 관리를 통해 안전한 원료의 사용률을 높여가고 있지만, 한국법인 에스씨존슨코리아가 본사 수준의 제품 안전성과 투명성을 제공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글로벌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으며, 국내외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다국적 기업의 경우 강하게 변화하고 있는 화학물질 관리 정책 흐름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기본적인 책임도 요구된다. 이번 협약에 빠진 다국적 기업의 경우 본사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데 이번 자발적 협약으로 본사 제품에 대해 원료를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본사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내 다국적 기업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화학제품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기 협약식이 열린 날 환경연합과 환경정의는 “글로벌 기업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원료 안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생활 속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해

 
2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기업이 자발적으로 전 성분을 공개하고, 시민사회와 함께 제품의 원료를 평가하는 방안까지 모색해보겠다는 것은 협약의 성과이자 큰 변화이다. 단시간에 이러한 움직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라는 유례없는 생활화학제품 피해가 있었고, 참사 이후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국민의 열망과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서는 더는 시장에서 생존과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기업의 태도를 바꾸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국가의 마땅한 책무임을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협약 이행을 위한 행정적 지원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2기 협약 이후에 변화될 상황을 그려본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 공동의 노력과 성과로 인해 국민이 원하는 생활화학제품 안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되고 사회적 신뢰를 쌓아간다면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강화에 있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글 /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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