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사의 생존자 보리 공주의 병상일기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4181명, 이중 1022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대참사에서 살아남은 이가 있다. 두 차례의 폐 이식 수술, 매주 반복되는 핼액 투석과 기관지 확장 시술 등 힘든 투병 중이지만 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생존자이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증거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가 지난 6월부터 SNS에 병상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숟가락 들 힘도 없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 담은 글은 받침도 띄어쓰기도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 안에는 그가 전하고 싶은 말들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21년 6월 25일

“안녕하세요보리공주안은주입니다”

 
2021년 6월 25일 휠체어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 본관 건물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입원한 지 2년 8개월만의 외출이었다 사진제공 안은주
 
간만에 바깥 외출이었다. 산소통을 매단 휠체어를 타고 병원 건물 앞까지 나온 은주 씨는 모처럼만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11월 입원한 지 2년 8개월 만에 첫 외출이었다. 그의 목에는 튜브관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두 차례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숨 쉬기가 힘들어 목에 튜브를 연결해 산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수술 합병증으로 신장도 망가져 일주일에 3번 혈액을 투석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기관지 확대 시술을 받고 있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고 몸 뒤적이는 것조차 못해 몸 곳곳에 욕창도 생겼다.
 

2021년 6월 28일

가습기살균제는가정파괴범이며말없는살인자입니다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했던 그다. 좋은 체격에 운동 소질까지 타고나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선수로 뛰었고 청소년국가대표로도 발탁돼 코트를 누볐다. 실업팀에서 선수로도 뛴 그는 결혼 후에는 경남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배구코치도 활동했다. 보리공주는 코트를 누빌 때 불린 닉네임이다. 20년 전 월영공주, 딸기공주와 함께 3공주로 불리며 생활체육 배구계를 주름 잡았다. 그들이 뜨는 날이면 경기장은 들썩였다. 은주 씨는 경상도 출신이라 보리공주라 불리며 배구 코트장을 펄펄 날았다. 
 
그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2010년 어느 날이었다. 전과 달리 배구 경기 1세트를 뛰고는 너무 숨이 찼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심한 기침과 함께 호흡곤란까지 찾아왔다. 동네 병원을 찾은 그는 폐렴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한 달간 입원을 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다. 의사는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줬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이 상태로는 2년도 힘들어요.” 검사결과를 전하는 대학병원 교수의 말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몇 달 전까지도 배구 코트를 누비던 그가 하루아침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이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원인미상폐질환’이 그가 시한부 선고와 함께 받은 병명이었다. 그의 나이 마흔 셋이었다.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발표로 폐질환의 원인이 밝혀졌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옥시에서 판매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해왔다. 99% 항균에 온갖 좋은 말은 다 쓰여 있어 의심 없이 무려 3년 가까이 사용해왔고 집안엔 쓰다 남은 가습기 당번도 남아 있었다. 
 
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2011년 1차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했지만 2014년 3월 정부로부터 받은 그의 판정등급은 3단계였다. 참사 초기,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4단계로 나눠 1단계(관련성 확실), 2단계(관련성 높음)만 피해자로 인정하고 지원했다. 3단계(관련성 낮음), 4단계(관련성 거의 없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지원도 없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노출은 확인됐지만 폐질환과의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워 3단계로 판정했다고 설명했다. 납득할 수 없는 판정에 재판정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든 투병생활에 원망과 분노가 더해졌고 건강도 더 악화됐다. 결국 폐 이식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써야 했다. 가습기살균제는 건강만 뺏은 게 아니었다. 병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그것도 부족해 어머니와 동생은 살던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2015년 10월 폐 이식 수술을 받고 호전되는 듯 보이던 그는 2017년 거부 반응이 나타나 한차례 더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합병증으로 입원 치료 중이다.   
 
 

2021년 7월 12일

보리공주님은 일주일째 원인 모르는 통증과 구토로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못하고 영양제만 맞고 있습니다.

 
아픈 은주 씨를 대신해 언니인 희주 씨가 일기를 올렸다. 함안에 살고 있는 희주 씨는 동생을 보기 위해 전날 코로나 검사를 마친 후 새벽부터 일어나 함안에서 마산으로 다시 마산에서 서울행 첫 기차를 탔다. KTX를 타도 오고 가는 데만 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간병인이 있지만 기관지 확장 시술 등 보호자가 필요한 날이나 간병인이 쉬는 날이면 생업인 식당문을 닫고 새벽부터 달려와 동생 곁을 지키고 있다.
 
1차 폐 이식 수술 받고 한동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었다. 퇴원 후 기운을 차린 동생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돕겠다며 서울에서 진행하는 가두 캠페인이나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언니는 ‘너부터 챙기라’고 말렸지만 동생은 아픈 사람 심정은 아픈 사람이 안다며 거리로 섰다. 그 때 그를 더 말렸으면 괜찮았을까, 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가 된다. 
은주 씨와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관심으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부 폐질환만을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을 인정하던 정부는 피해 인정 질환을 점점 확대했고 급기야 2021년 2월에는 법을 개정해 질환을 특정하지 않고 ‘전체적인 건강 상태를 검토해 건강 피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바꿨다. 기존의 1~4단계로 구분했던 판정 등급도 폐지하고 인정과 불인정’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은주 씨도 2017년부터 일부 병원비를 지원 받기 시작했고 2020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자가 되었다. 9년 만에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2016년 5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옥시 제품 불매 집중 행동기간 선언’ 기자회견에 참여한 안은주 씨는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배상 조치를 촉구했다 ⓒ조수자
 
정작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당장 병원비를 해결하기에도 턱없이 적다. 생업도 이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비와 간병비도 전액 지원이 아니다. 당장 간병비만도 한 달에 400만 원 넘게 들어가는데 정부 지원금은 150만 원뿐이었다. 지난 1월 정부는 은주 씨처럼 가습기살균제로 장애가 남은 사람에게 장애등급에 따라 장애급여를 일시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은주 씨도 장애급여를 신청했지만 8개월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담당자는 신청자가 많아 심사가 길어지고 있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은주 씨는 이미 의료보험공단에서 장애등급을 받은 터다. 무엇을 더 심사를 한다는 것인지 언니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년이 넘도록 은주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그 어떤 보상이나 배상도 받은 적이 없다. 자신들이 제조해 판매한 제품으로 폐 이식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누워 있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는 기업에게 사실 기대도 없다. “바라는 거요? 은주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휠체어라도 좋으니 엄마가 있는 집에 같이 가는 거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생존자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언니의 바람이다.    
 

2021년 8월 10일 

오늘하루도정말수고많이하셨습니다.함께하지못해죄송합니다.

 
은주 씨 SNS 병상일기에 올라온 사진에 은주 씨가 댓글을 달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이 애경산업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 사진이다. 사진을 올린 이는 김태종 씨다. 이날은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2007년부터 2009년 5월까지 사용한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는 그의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원료를 제공한 SK케미컬과 그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애경산업과 이마트로부터 그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더 참담하게도 지난 1월 법원은 SK, 애경, 이마트 등 cmit/mit 관련 제조판매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날 이후 김태종 씨는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과 함께 가해기업이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보상할 것을 촉구하며 일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8월 31일, 최악의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11년이 넘었지만 피해자와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은주 씨는 다시 힘을 내 한 자 한 자 글을 남긴다. 
 
“우리모두승리하는그날까지건강챙겨서꼭이겨보자고요 모두모두고맙고감사합니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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