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문명과 대량멸종의 역사
프란츠 브로스위머 지음 / 김승욱 옮김 / 에코리브르 / 값 13800원 / 일반
장례라는 절차를 통해 이승을 떠나가는 개체들의 죽음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를 납득시킨다. 나는 떠나도 나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남아 세상을 꾸리며 살 것이므로 그들 모두의 죽음이 없는 한 나는 불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이루는 방식이다. 그런데 나의 죽음을 기억해줄 이들이 모두 함께 죽어버리는 종의 죽음이 찾아온다면?

인류가 지구의 잉여만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지구의 본원적인 생태자본을 헐어내 낭비하면서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와 함께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동식물들이 인류 출현 전인 13만 년 전에 비해 거의 1천 배의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 프란스 브로스위머는 지적한다.

산업사회, 신자유주의 세계화 맥락 속에서 자연생태에 대한 배려 없는 착취가 그 원인이다. 저자는 그것을 ‘생태계 살해’(Ecocide)라고 부른다. 생태계 살해자로 계속 살 것인지 반성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때다.

원제 『A Short History of Mass Extinction of Species』(2002)

팥죽 할멈과 호랑이
박윤규 지음 / 백희나 그림 / 30쪽 / 시공주니어 / 값 8500원 / 만 4~6세
‘네버랜드 옛이야기 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인 「팥죽 할멈과 호랑이」에 시인인 박윤규가 새로운 글을, 백희나가 그림을 맡았다. 백희나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가로 2004년에 출간된 『구름빵』의 작가다. 『구름빵』은 인물과 소품을 직접 만들고 사진을 찍어 엮은 독특한 책으로 그동안 소리소문없이 입소문을 탄 그림책이다. 과연, 이번에도 백 작가의 한지인형 사진과 그림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우선, 얼마 남지 않은 이로 인심 좋게 웃고 있는 주인공 할머니는 그 표정이 손에 잡힐 만큼 구체적이다. 날리는 눈발과 바람에 휘날리는 할머니의 저고리 고름, 부엌을 가득 채운 하얀 김, 가마솥 가득 끓고 있는 팥죽 등의 소품들은 입체적인 그림이 주는 아기자기한 맛과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효과를 낸다. 할머니를 잡아먹으러 오는 호랑이의 표정은 이제 막 민화에서 걸어나오는 듯 해학적이며 호랑이 눈에서 찔끔 비어져 나온 눈물까지 표현되어 있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단점이라면 호랑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 통쾌한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느껴진다는 것 정도.

박윤규의 글은 아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투와 반복되는 문장 사이로 적절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우리 옛이야기 시리즈는 『한국구전설화』(임석재 판본)가 기초이며 ‘세계이야기’ 아홉 권과 함께 나왔다.




지난 4월 21일 끝물막이 공사로 새만금의 거대한 갯벌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물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차츰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는 이름과 함께 묻히는 갯벌은 애초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얼마나 갯벌에 대해 알고 있었나? 그 전의 나는, 갯벌과 바다는 단순히 밥상에 오르는 생선과 조개들을 캐내는 곳쯤으로 생각했었다. 딱 그만큼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난 후의 내 느낌은 비로소 날 것인 채로 다가온 갯것들의 아픔, 어민들의 고통이었다.

바다에서 바다를 보는 시선
‘바다에서 바다를 보는 시선’이란 제목은 머리글의 제목이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아닌 바다에서 바다를 보는 시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 글귀는 보는 순간 내 뒤통수를 쳤다. 그동안 한 번도 바다의 입장에서, 새만금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새만금간척사업을 맹목적으로 추진하는 사람들처럼 나의 입장만, 사람의 입장만 고수했던 건 아닐까? 글쓴이 역시 새만금 방조제는 갯벌과 갯일을 ‘쓸데없는 땅, 쓸데없는 일’이라고 무시해온 ‘육지 것’들의 오만과 편견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의 야심과 건설업자의 잇속에 의해 만들어진 새만금이라 믿었던 내게 나 또한 ‘육지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여실히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15년을 끌었던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됐을 때 한 정치인은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새만금이 있다.”고 했다.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만리장성과 바닷물을 막기 위해 쌓은 새만금 방조제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물론 둘 다 힘없는 민중이나 말 못하는 뭇 생명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둘 다 바다를 적으로 생각한 육지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있다.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의 ‘몸짓과 기억’으로부터의 출발
“새만금 어민들의 한 달은 35일. 갯벌이 만들어준 시간과 공간. 갯마을 사람들은 시계의 분침과 초침이 가리키는 시간으로 일상을 재단하지 않는다. 자연이 가르쳐준 물때에 따라 바다에 나간다. 그레를 둘러맨 어민들이 거전갯벌을 가로질러 생합을 캐러 가고 있다…….”

철따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어민들의 생활과 시간개념,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사투리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저자는 참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방관자, 관찰자로서 머무르기보다는 애정을 갖고 지켜봐온 사람 특유의 마음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의 과정, 시대별로 사용되었던 어구들에 따라 바뀌는 생활, 그들을 먹여 살려온 바다와 갯벌의 상황에 따라 울고 웃는 어민들의 모습이 눈물겹다. 물때(사리, 조금), 그레(긁게, 글갱이, 그렝), 뽐뿌배, 파시, 어살(죽방렴) 등의 어민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 갈 바 없는 ‘육지 것’인 나 또한 그들의 삶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새만금, 뭇 생명을 키워온 바다의 자궁
새만금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갯벌하구이다. 하구 갯벌의 중요한 기능은 인간이 배설한 온갖 것들을 소화해내며 어류의 산란장, 양육장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갯벌 생물들의 번식장이며 서식지로 말 그대로 수많은 바다생물의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바다생물의 70퍼센트 이상이 일생 동안 하구나 갯벌에 한 번 이상 들어와 산다고 하니 갯벌의 가치는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그런 곳이겠다. 사람으로 치면 고향 같은, 물질적인 잣대로는 계산될 수 없는 그런 곳.

봄에는 실뱀장어와 주꾸미, 여름에는 갑오징어와 꽃게, 겨울에는 숭어와 생합, 동죽을 키워낸 갯벌에 붙어 사는 어민들에게 농한기도 없고, 정년퇴직도 없다.

“팔순의 백씨 할머니가 처음 계화도로 시집왔을 때는 열 다섯 살이었다. 지금이 여든 두 살이니까 1940년대 후반쯤이다. 그때는 물이 빠지면 육지인 돈지마을이나 창북리로 나가서 갯것을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논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에 계화도 갯벌은 걸어만 다녀도 생합과 바지락이 푹푹 튀어나올 정도로 많았다. 개맥이를 하면 그물이 터질 정도로 고기와 생합이 걸려 있었다.”

이는 결코 백씨 할머니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갯벌과 함께 사는 어민들의 본래 모습이고, 철따라 농사짓고 내가 가꾼 농작물이 또 그예 내 식구들 입으로 들어가던 우리 부모님들의 예전 모습이다. 갯벌과 바다가 사라지면서 수천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갯벌과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의 생활모습과 문화,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꾸준히 새만금을 조사해온 사람들은 새만금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죽음의 징후들을 타전하고 있다. 육지인의 눈으로만 재단했던 결과가 이제 하나둘 나타나는 것일 테다. 물막이공사 이후 갯벌은 말라가고 조개들은 죽어 널려 있다고 한다.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무작정 고향을 떠나는가 하면 갯벌에 나가 죽은 조개들을 주워 담는 일도 한다고 한다.

“진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덤프차에서 물막이공사 돌덩이들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으면 억장이 무너져.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여. 농사지을 줄도 모르고 바다에서 꽃게 잡고 그렇게 살았는디, 어찌라고. 시화호도 세 번이나 갔다 왔어. 첨에 가서 죽어 널려 있는 백합 보고 울었어. 꼭 새만금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이게 금덩어리야 황금덩어리야, 바다가 저금통이야, 바다 막으면 절대 안 돼. 시화호 20년 되었는데 갈대밭이야. 막아지면 먼지가 날려서 못 산다여. 염이 날려서 농사가 안 된다여……. 바다만 가면 돈이 나오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라면 제목이 된 ‘새만금은 갯벌이다’의 ‘갯벌’이 실은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육지의 시선이 아니라 어민들의 시선으로 섬과 바다 그리고 갯벌의 삶을 이야기해보려 한다는 글쓴이의 마음에 나는 얼마나 다가간 것일까?


이수진 cksu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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