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57] ‘죽음을 생산하는 회사’ 몬산토

 
베트남 전쟁 당시 남부 베트남에는 에이전트오렌지가 살포되었다. 게릴라가 숨어 있는 나뭇잎을 없애려 뿌려댔던 에이전트오렌지는 우리가 아는 그 고엽제다. 적을 죽이기 위한 모든 수단은 당연히 그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전쟁 중에 성취하는 모든 승리는 파괴와 절멸의 서곡이다. 고엽제가 딱 그랬다. 참전한 군인들은 치명적인 피해자가 되었고, 여러 모로 상처 난 우리 현대사에 그들의 이름들 역시 새겨졌다. 그 고엽제의 제조사가 바로 몬산토다. 
 
몬산토가 생산하는 것들이 끔찍한 이유는 대부분 땅에 살포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농작물 생산과 더 효율적인 토양 관리, 더 많은 농업 시장의 이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몬산토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살포되고 있다. 그렇게 뿌려진 것들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키워내는데, 그냥 뿌려지지 않고 “소금보다 덜 위험”하다거나 “단 한 번만 뿌려도 된다”거나 하는 식의 광고 카피를 동원한다. 물론 이것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단적인 예로, 초록색 통 안에 담긴 제초제 ‘라운드업’에는 글리포세이트라는 독성 물질이 함유돼 있었다. 독성 물질이 함유된 제초제가 비극적인 것은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강한 독성 물질이 필요해진다. 사용자들의 건강은 무방비로 악화되었고, 생태계 교란이 발생했다. 몬산토의 모든 생산물들을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이 회사의 가장 강력한 생산물은 ‘죽음’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비극의 와중에도 싸우는 자들이 존재한다. 죽음을 생산하는 회사와 글리포세이트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인 세계시민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바로 ‘에코사이드’다. 에코사이드라는 말은, 직관적으로도 광범위하고 끔찍한데, 이것 외에 다르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가령, 글리포세이트를 원료로 하는 제초제를 사용한 마을에서 원인 불명의 신장 질환이 나타났는데,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아찔해진다. 글리포세이트가 땅속에 스며들어 여러 가지 중금속과 결합하면 ‘매우 안정적인’ 복합화합물 상태로 30년 이상 지하수층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글리포세이트의 살충력은 매우 강력한데, 글리포세이트가 땅에 흡수되면, 병충에를 견딜 수 있도록 작용하는 유익한 유기체들까지 모두 제거된다. 강력한 항생제란 언제나 동시에 강력한 킬레이트제일 수밖에 없다. 일단 킬레이트가 이뤄진 다음에는 글리포세이트는 매우 강력해지는데 이런 걸 장기간 대용량으로 살포하게 되면 이후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염된 땅에서 시작되는 모든 종류의 질병은 그 연속성과 지속성 때문에 마치 전염병과 다르지 않은 위험을 갖게 된다. 땅과 물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데,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는 이를 우리는 종종 잊는다. 
 
몬산토의 명백한 피해자들은 ‘몬산토 국제법정’에 서서 과학의 잘못된 쓰임새를 경고했고, 정부와 기업의 부도덕한 결탁을 드러냈으며, 글리포세이트의 독성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 파괴된 자연환경, 파괴된 공동체를 증언했다. 위험한 물질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말하는 일은 모든 싸움의 출발점이다. 에코사이드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규정하는 로마 규정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권고 의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시작된 싸움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출몰하면 우리는 일단 숨는다. 바깥으로는 바이러스의 진원지부터 바이러스 접촉자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하게 원망하고 분노하고, 안으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칙들에 우리를 기꺼이 가둔다. 그러다가 어떤 동물들이 전염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것들을 살처분하려고 뛰쳐나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호모에코사이드로 사는 셈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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