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60] 우리의 씨앗을 살펴야 할 때

 
지난겨울부터 시작이었고 벌써 코앞에 여름을 둔 이 시점까지, 우리는 제법 여러 계절을 ‘일단 멈춤’ 모드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시대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회고하는 일은 자기 반성적 차원에서나 앞으로 우리가 통과해야 할 새로운 차원의 시대를 위해서 유의미할 것이다.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고, 자취를 감추었던 물고기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들은 그저 신기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속도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생태적 사건들이다. 우리의 도시 집중적 삶은 계속 진행되어도 될까. 자본의 질서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방식의 삶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 이런 식의 물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건들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시에, 살았던 대로 사는 삶 말고,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전환적 삶에 대해서 차근차근 생각해볼 시점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은 그러지 않을 방법이 뾰족하게 없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생명을 살리는 토종 씨앗 기행 30년』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대목이 있을 것이다. 대륙을 오고 가는 비행기가 끊기고 배가 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가 공통적으로 걱정했던 것 중의 하나는 이 전염병이 장기화되었을 때 벌어지게 될 식량 문제였다. 밀의 수입이 중단되는 걸 시작으로 거의 모든 곡물과 야채의 글로벌 유통이 불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이것은 걱정 차원을 넘어서서 공포에 가까운 일이다. 대규모의 전쟁이나 무역 분쟁 외에 전 세계적인 전염병 발병 때문에 식량 주권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는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그저 걱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3퍼센트 수준, OECD 가입국 중에서도 낮다. 쌀을 제외하면 보리쌀 24.9퍼센트, 밀 0.9퍼센트, 옥수수 0.8퍼센트, 콩 5.4퍼센트 등 곡물 대부분의 자급률이 30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에 비축해둔 수입 곡물에 의존하면서 코로나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에 막연히 기대는 것보다 더 현명한 방법은 우리의 씨앗을 살피는 일일지도 모른다. 
 
토종의 씨앗을 지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가진다. 종자기업이 만든 비싼 씨앗 때문에 농가가 입는 상시적인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인 동시에, 생산가는 상승하고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는 악순환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종자들은 자기가 자라는 환경과 농부의 손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재배 품종의 다양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획일화된 재배 품종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은 코로나 직전까지의 세계에나 어울리는 일이다. 1978년 우리나라는 벼 230만 섬이 감소하는 커다란 흉년을 입었는데 이는 통일계 벼 품종만 80퍼센트를 심어 내병성 유전인자의 획일화로 인한 피해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도열병은 그해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벼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병충해로 인한 피해 이상으로 위협적이고 당면한 재난은 급변하는 기후 환경이다. 이를 견디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생장 환경에 잘 적응하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것 외에 묘수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종자를 지킨다는 것은 그것들의 제한 없는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식물 종자마다 다른 신비로운 정보와 함께 스스로 자생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민들레가 바람을 따라 퍼져서 널리 만발하고, 봉선화도 자기 크기의 수천 배 이상을 비행한다. 사과나 자두, 앵두 같은 것들 속에 있는 종자는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고 그것들의 분변 속에서 나와 싹을 틔운다. 자유롭고 강인한 그것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인위적으로 획일화되는 작업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흙과 농부의 에너지일 따름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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