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61] 지리산 산촌일기

 
제주 이주 열풍이 막 일기 시작한 무렵에 제주에 내려와서 벌써 10년을 살고 있다. 제주 한 달 살기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과감하게 바닷가 작은 마을에 그보다 한참 더 작은 카페를 개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10년간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는데, 어느 마을에서나 포클레인 한두 대쯤은 늘 기본 풍경으로 갖게 되었다. 제주는 사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도시의 꼴을 갖춘 섬이다. 이런 와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드디어는 지난해에는 제주를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입도하는 수를 앞질렀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제부터 남은 시간들은 로망이 식어버리는 제주를 어떻게 살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리산 산촌일기’는 어쩌면 제주보다 더 멀고 깊숙한 곳에서 기록된 삶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남부럽지 않은 도시가 될 가능성이 더 낮은 곳에서 씌어졌다는 건 분명하다.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사는 일은 여러 가지로 좀 쓸쓸하다. 
 
우선 가장 낭만적인 환상 하나는 버리고 살아야 한다. 이를 테면,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일을 내내 실현하면서 사는 일 같은 것. “이 세상은 벌면 버는 만큼 써야 하는 구조”이고,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산다고 해서 딱히 예외는 아니다. 가령,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고민이고 또 최대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물론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 때문에 도시보다는 덜 소비적인 생활을 할 수는 있다. 
 
도시에서와 전혀 다른 방식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정서적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은 이방인 생활이다. 내가 사는 제주도에서는 그걸 괸당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반적으로는 지역 텃세를 성토하기도 한다. 사실은 정확히 말하면, 정서적 교류가 가능한 친구나 이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에 기반을 둔다. 생활의 공동체와 마음의 공동체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자기만의 방식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론 귀농, 귀촌 생활을 선택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정서적 선물도 충분하다. 가령 텃밭을 만들 수 있고, 자기가 수확한 것들을 이웃이나 친구와 나눌 수 있으며,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도시에서보다 훨씬 더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삶 같은 것. 누구나 도시를 떠나면 예찬하는 그런 종류의 삶이 있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열정적 환경운동가로 살았던 과거의 저자가 민박집 사장님으로 사는 현재의 자신의 삶을 통해서 새로운 성찰의 단계에 도달하는 대목이다. “저 집이 있어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었다. 오직 내가 사랑하고 미워한 세상만이 세상이라고 믿었던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집이었고, 그 집을 찾아준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자기의 민박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웃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의지하는 삶에 대한 기대는 십년 사이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고 쓰고 있으며, “사이는 소원해졌고, 서로 화해도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문장에서는 마음이 쓰렸다. “아, 지금이라도 이 산골을 빠져나가 고향으로 돌아갈까. 신작로를 걸어, 방죽을 지나, 왕버들 그늘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 정미소 골목길을 걸어들어갈까. 타작마당 흙먼지 속에서 깽깽이 춤을 추던 그 친구들을 만나볼까.”
 
그러니 결국에는 도시를 떠날 수는 있어도 사람을 떠날 수는 없는 거다. 떠나온 저곳에서도, 떠나온 이곳에서도 결국 우리는 마음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자꾸만 경계에 서게 되는 모양이다. 남부럽지 않은 도시 같은 섬에서 지리산 산촌일기를 쓰는 이방인을 상상하는 일은 반갑기보다는 조금쯤 쓸쓸하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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