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63] 자연과의 비밀 연대에 참여할 준비 되었는가

강영옥 옮김, 남효창 감수, 페터 볼레벤 지음, 더숲
 
사시나무처럼 떤다. 이 관용적 표현은 우리말에서도 독일어에서도 동일하게 쓰이는 모양이다. 전래 민요에는 “덜덜 떨어 사시나무”와 같은 노랫말이 있는데, 독일어에서도 역시 사시나무를 뜻하는 ‘Espe’와 ‘Aspe’는 Zitterpappel의 동이어이고, 이 단어의 Zitter는 ‘떨다’는 뜻의 동사 Zittern에서 왔다. 영어에서도 사시나무는 ‘떠는 나무(tremble tree)’이고, 일본에서는 아예 ‘산이 울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사시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할 수 없이 가늘고, 비틀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그래야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 
 
사시나무의 경우에만 언어가 자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뿌리 박혀 있다, 혹은 뿌리 뽑혀 있다. 이 표현으로부터 산림학자인 페터 볼레벤은 무려 농경과 정착 생활의 시작을 읽어낸다. 숲을 개간해 경작할 땅을 쟁취해야 했던 이들은 나무줄기만 베어낼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뽑아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의 뿌리가 박혀 있거나 뽑혀 있거나 하는 일들은 문명사에 깊이 관계 맺는 자연의 처지를 반영하는 말로 아직까지도 우리가 쓰고 있는 것이다. 
 
숲에 대한 모든 종류의 예찬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더 현명한 답을 빠르게 내놓아야 하는 시대에 이르러, 페터 볼레벤이 제시한 비밀스러운 연대의 개념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숲에 개입하기보다는 숲에 포함되는 방식이 운동 방향을 가리킨다. 
 
숲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단순 비교할 수만 있어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숲에 적절한 핵심 단어는 ‘시류(유행)에 맞는’이다. 원래 숲은 시간을 초월한 공간으로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변한다”는 사실은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생각하고 ‘숲의 트렌드’를 중심에 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이해는 쉽고, 그렇게 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숲 혹은 자연과의 관계 회복에서 무엇보다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일 수가 있다. 태도가 본질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의 후반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듯 나무를 관찰한다. 맨 꼭대기에 있는 수관은 우리의 머리, 그다음에 있는 나무줄기는 몸통, 맨 아래 있는 뿌리는 지탱 기관이자 지지기관으로 우리의 발에 해당한다. (중략) 인간과 달리 나무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모든 식물의 대응물은 토양 속 뿌리에 숨겨져 있다. 나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커다란 존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이다. 자연보호를 원한다면 자연에 공감하는 마음을 먼저 키우자.” 관계를 맺는 사이에서는 이 단순한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군다나 연대를 바란다면 어쩌면 이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p.s.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라는 거대한 하나의 운동에 물론 나는 기꺼이 참여할 의사가 있다. 자연에 대해서만큼은 낙관론자가 될 준비가 얼마든지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끝내 자신이 없는 것은, 나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에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에 비해 역사성도 생애주기도 짧은데, 그럼에도 내내 ‘밥 밖에 모르는 것들’로 살아왔고, 이걸 극복해낼 만한 유전자적 기억을 아직 새기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가 사는 제주에서는 공항을 하나 더 지어야 하는 이유로 개발을 명령하는 목소리가 섬을 울리고 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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