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65] 이게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홍수열 지음, 슬로비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그나마 긍정적인 게 뭐가 있을까. 애써 그런 걸 생각해보는데, 인간의 삶에 대해서 거의 총체적인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 아닐까, 싶다. 바이러스의 강제 덕분에 우리는 지금 모두 얼떨떨하게 반성 의자에 앉게 돼 버렸다. 인적이 끊긴 유명지에 철새가 다시 돌아온 이유에 대해서, 공장 가동이 멈춘 덕에 공기가 맑아진 일에 대해서, 서로 길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구의 온도가 지금보다 더 상승하고 빙하가 녹아내리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생태계를 떠돌게 되리라는 얘기가 디스토피아 무비의 한 장면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공포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인지한다. 이 상황에서 조금 절망적인 지점은, 우리가 과연 우리 세대 내에 슬기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때다. 하다못해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마스크마저 지구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되는 상황이 아닌가. 이래저래 살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일이 모종의 가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막막한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유효한 처방은 매뉴얼 같은 걸 쥐어 주는 거다. 발만 동동 구르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스스로를 구하고 지구 전체에 덜 민폐를 끼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대체 왜 이런 종으로 살고 있는가 한탄하는 대신, 다 쓴 샴푸나 세제 페트병에 있는 마개를 꼭 빼고 버리는 데 신경을 써보기로 하는 거다. 기다란 플라스틱 관에 철로 된 스프링을 제거할 때 파쇄기이 칼날이 많이 훼손되는데 이 교체 비용이 만만찮다. 마개는 일반 쓰레기통에, 몸체는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에 넣는 일만으로도 여럿을 도울 수 있다. 스티로폼 박스에 붙은 비닐 테이프나 운송장을 떼는 일, 음식물이 묻은 비닐이나 라면 수프 봉지를 세척하고 배출하는 일, 세척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일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각인하고 실천하는 일은 분명히 우리의 오늘과 내일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터, 칫솔, 음료 빨대 등 부피가 작은 것들은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고, 실리콘 젖병이나 스페츌러, 휴대폰 케이스, 캡슐 약이나 껌 포장재, 아이스 팩이나 보냉팩, 아이들 장난감류 모두 플라스틱인 척 하는 쓰레기들에 속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암기과목을 신설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였다. 오늘 아침에 외워두면 당장 오늘 저녁에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는 종류의 암기가 바로 이런 것들이니까 말이다. 
 
제로 웨이스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 모두의 거의 유일한 공동 목표가 되어 마땅한데, 이를 위해서 꼭 지켜야 할 규칙은 3R이다. 쓰레기를 줄이고(Reduce), 재사용하고(Reuse), 재활용(Recycling)하는 일로부터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생활 목표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거절하기(Reject)와 썩히기(Rot)를 더한 5R까지 거론되고 있다. 썩히기(Rot)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썩는 쓰레기를 직접 퇴비화하는 일이라, 도시생활자들에게는 난이도가 있는 R이긴 하다. 거절하기의 R은 좀 여러 가지 의미로 용기(容器+勇氣)를 필요로 한다. 일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플라스틱 일회용기 대신에 개인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일 등은 그나마 괜찮은데, 불필요한 소비를 거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유행에 합류하는 소비를 하지 않는 일이다. 패스트 패션뿐만 아니라 울트라 패스트 패션까지 등장한 시대에 소비의 중심을 제대로 확립하는 일은 수행하려면 매뉴얼 같은 걸로는 쉽게 몸도 마음도 움직여지지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럴 때는 다시 좀 숨 막히는 질문으로 돌아가는 거다. 인간이라는 종의 미래에 대해 한탄하면서 말이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이 외침은 클린하우스에만 아니라 우리 삶, 우리 생활 곳곳에 잘 들리는 곳에 붙여두기로 하자.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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