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66] 착한 소비에 대한 착각

 
마침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서 돌려놓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택배 상자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아이스팩은 몇 개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인터넷 빠른 배송으로 식재료를 주문하는 것도 오늘의 할 일이다. 이런 날 읽기에 『착한 소비는 없다』는 매우 불편한 책이다. 그런데 사실은 언제 읽어도 불편할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문제를 묻는 책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열이면 열, 인간이라는 종은 지구에서 대체 어떻게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묻는다. 시스템을 단시간 안에 개선할 수 없다는 데서 이 질문은 우리를 여러모로 곤란하게 만들고 종의 슬픔과 불편을 매순간 자각하게 만든다. 환경적 문제는 거대한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답은 매우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
 
“그렇다면 어디서 미세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배출할까요? 빨래입니다. 놀랍게도! 천연섬유가 아닌 합성섬유를 세탁할 때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럼 아예 빨래를 하지 말아야 할까요? 미세 플라스틱을 덜 배출할 세탁 방법은 없을까요? 세탁과 탈수 시간을 줄이면 됩니다. 섬유가 마찰할 때 미세 섬유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물 온도가 높을수록 미세 섬유가 더 많이 나오니 낮은 온도에서 세탁하는 게 좋습니다. (중략) 빨래를 모아 빠는 것도 방법입니다. 빨래가 많으면 마찰 강도가 약해져서 미세 섬유가 덜 나옵니다. 혹시 이러면 빨래가 제대로 빨리지 않을까 걱정되시나요? 옷을 깨끗하게 빠는 것보다 내 몸에 들어오는 미세 섬유를 줄이는 게 깨끗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한 발 더 나아가 빨래를 너무 자주 하지 않는 것도 좋겠습니다. 미세 섬유는 세탁 횟수에 비례해서 늘어나니까요.”
 
그저 세탁을 할 뿐인데, 그게 지구에 대해서는 모종의 가해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그게 옷만 그런 게 아니라 아보카도를 먹는 일, 팜유를 얻는 일, 손난로를 사용하는 일, 너무 많은 고기를 먹는 일, 핸드폰을 사용하는 일,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지구의 입장’에서 쉬운 일이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킨 후에 차원이 다른 어떤 세계로 사라지지 않고, 다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그러니까 지구의 반대편이랄지, 나와 당신이 등지고 선 바다나 산이랄지, 그런 곳으로 버려진다. 일회용을 비롯한 플라스틱의 소비가 줄지 않는 데는 재활용에 대한 믿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건 필요에 의한 믿음일 따름이다. 1950년 이래 65년 동안 200배가 넘게 증가한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고작해야 세계 평균 9.5%에 불과하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이유는 뻔하다. 사시사철 신선한 식재료를 인터넷 빠른 배송으로 주문받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싼 값에 팔리는 핫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서, 예뻐 보이기 위해서, 편리해지기 위해서. 
 
루이스 멈퍼드의 『인간의 전환』에 따르면 원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통일감을 느끼면서 살았다. 자연은 인간적이었고 인간은 자연적이었던 시간을 그들은 살았다. 얼마 전, 제주의 날씨가 기가 막혔다. 11월 말에 이르러 24도를 상회하는 날씨가 이삼일 이어지더니, 사흘째 되는 날에는 비가 오고, 무지개가 뜨고, 바람이 기괴하게 몰아치고, 비가 그친 뒤 해가 밝게 뜨고, 다시 폭풍우 같은 바람이 불었다. 그 하루 동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샤머니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자연을 막 쓰고, 결국에는 계절의 파괴라는 현실을 살게 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착한 소비는 없고, 소비하는 내내 우리는 괴롭기만 할 것이다. 괴롭기라도 해야 살 수 있는 시대니까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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