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71]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창문 너머로 그 바람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차라리 낙화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놀이터 울타리에서 피어난 커다란 봄꽃나무들의 잎이 무리지어 떨어졌다. 황사와 미세먼지 층이 공기 중에 두껍게 자리 잡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잿빛의 길거리와 화사하게 무너져 내리는 꽃무더기는 조금 다른 의미로 탄성을 자아냈다. 이게 미래의 풍경인가, 싶은 심정. 그러나 그것은 부정확한 표현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이게 곧 봄의 풍경이었다. 
 
그날의 거센 바람은 금방 비를 불러왔다. 놀이터와 마주보는 곳에 클린하우스가 있다. 주말의 클린하우스 풍경은 참담한 데가 있다.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가 종류별로 구별되어 있지만 무색하다. 쓰레기는 칸마다 용량을 넘쳐 도로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곤 한다. 자동차는 그것들을 짓이기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플라스틱으로 넘쳐나는 세상에 공포감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사람들은 포장 용기 하나 버리는 데에도 최선을 다한다. 그게 자기가 사는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종류의 선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데 있었다. 바람에 날린 종이상자, 플라스틱 물병, 미처 다 깨끗하게 비워내지 못한 음식물 쓰레기 비닐 같은 것들은 비가 내리는 골목을 제멋대로 차지했다. 그것은 모든 계절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바다에서는 거대한 산호초가 자꾸만 죽어서 발견된다. 지구 어느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다 꺼지지 않았다. 호주에서 일어난 산불은 진화까지 6개월이 걸렸고 호수 숲의 14%를 태워버렸다. 대형 화제는 이제 아주 드문 일은 아니게 되었고, 그런 종류의 규모가 되면 수백 킬로 이상 떨어진 곳의 하늘과 바다를 짙은 연무로 뒤덮어 버린다. 나오미 클라인은 브리티시컬럼비아 내륙에서 발생한 화재가 600km 떨어진 선샤인코스트 해안가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엄청난 양의 연무가 원래 밝은 파란색이던 하늘의 색깔을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희뿌연 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태양열의 일부를 우주로 반사시켜 인공적인 온도 하강 효과를 일으켰다. 태양마저도 기이한 햇무리를 두른 보잘것없는 붉은 불덩이로, 하늘을 가득 메운 연무를 태워 없앨 기력조차 없는 불덩이로 바꾸어놓았다. 짙은 연무는 별빛도 덮어 버렸고 저녁노을도 삼켜 버렸다. (…) 이 연무는 자기 나름의 강력한 기상 시스템을 창조해 내고, 우리가 있는 이곳뿐만 아니라 거의 26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의 기후를 변화시킬 만큼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것은 이제 내일의 우리가 살게 될 하늘의 풍경이었다.
 
나오미 클라인의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기후 재앙 시대의 생생한 현장 고발인 동시에 그린 뉴딜을 통한 미래의 모색이다. 세계 곳곳의 살풍경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풍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은 시스템적으로 제안한다. 나오미 클라인다운 열정과 영리함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우리를 독려한다.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집은 거짓 약속과 미래의 편익에 대한 경시, 그리고 희생자들 위에 세워져 어차피 처음부터 무너지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 어서 불을 끄고 그 자리에 전혀 다른 집을 짓자. 예전만큼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안식처와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짓자.” 우리가 살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 것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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