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73] 그것은 벽이다!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서울문화사
 
세상이 무엇 때문에 비극적인 엔딩을 맞게 될까. 누구나 한번쯤 하는 그런 상상. 평화의 세기가 도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전쟁의 세기는 지나갔고, 전쟁보다 훨씬 더 명백하고 가능성 높은 위험은 따로 있다. 기후 재난. 기후 변화는 순진한 관찰자의 시점을 내포한다. 기후 위기가 모종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단어라면, 기후 재난은 매우 설득력 있게 예언적이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이상 기후는 현재의 병증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징후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느낀다. 
 
『더 월』은 2019년 부커상 후보였다. 소설이 채택한 배경은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한 어느 미래다. 정치적으로도 혼란한 이 시대에 어느 섬나라는 모든 해안선과 국경을 둘러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다. 섬 바깥에서는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고, 안에 있는 이들은 그들을 침입자로 규정하여 그 침입을 막으려 애쓴다. 때문에 여기에는 벽을 사수하기 위한 경계병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들의 복무기간은 2년. 침입자들을 막아낸 자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고, 그것에 실패한 자들은 바다로 던져지게 된다. 그러니까 침입자들 중에는 이전의 경계병들 또한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계병들을 정작 괴롭히는 것은 침입자들과 벌이는 목숨을 건 한판 전투가 아니다. 벽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춥다. 외롭다. 그리고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투 때문에 두렵다. 
 
그러므로 『더 월』을 읽는 일은 스펙터클에 휩싸이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여기에 스펙터클이 있다면, 멀지 않은 디스토피아를 사유하는 스펙터클이 그나마 있을 따름이다. 그것들은 대체로 곤란한 질문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사람들이 왜 번식을 원치 않을까? 대격변 이후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파괴했기에 인구증감을 조절할 권리가 없다. 번식을 원치 않는 사람을 선택자라 부른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류를 우리가 전부 다 먹여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대부분 기아와 수난을 겪으며 사망과 절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인간의 삶을 우리가 감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1만 킬로미터의 벽에 200미터마다 보초를 서는 경계병들을 한번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안지를 한 번 써보시라. 대격변의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닥쳐왔을지, 그것부터 시작해야 하겠지? 말하자면 전쟁의 세기에서 평화의 세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기후재난을 불러온 지금-이곳 우리 자신에 대해서부터 써야 하겠지?! 사실 그 대답을 써내려가는 동안 제법 근사하다고 스스로 안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래의 경계병들에게 적당한 대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세대 간 죄책감이다. 기성세대가 이 세상을 돌이킬 수 없게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는 그런 세상에 우리를 태어나게 했다고 느끼는 거다.”
 
어느 작은 섬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수면 아래 잠긴다고 해도 우리는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느 도시가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에는 바다를 끼고 성장한 덕분에 자본주의를 가장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던 거대 도시들이라고 해수면 상승을 막아낼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소설에서처럼 모든 해안선과 국경에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치면서 생존을 도모할지도 모른다. 콘크리트를 쌓는 일은 매우 잘하는 일 중의 하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벽이라는 세계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유폐시키기 위해서 오늘을 사는 셈이 된다. 이런 우리를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말로 다그쳐야 할까.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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