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72] 재활용 함정에 빠지다

출근길에 늘 들리는 프랜차이즈 커피집에서 종일 마실 커피를 받는다. 매일 그러다 보니 직원들과 서로 익숙해져 말없이 텀블러를 내밀면 말없이 받아 커피를 채우고 찬물을 조금 더 부어 덜 뜨겁게 더 연하게, 내가 원하는 용량과 상태로 만들어 주는 사이가 됐다. 텀블러 용량을 넘는 사이즈를 주문하면 정량을 텀블러에 담고 남는 양을 작은 일회용 컵에 담아 내주기도 했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어느 아침나절, 연락 없이 찾아온 반가운 이를 사무실에서 만나 커피를 나눠 마셨다. 그이가 가고 나는 부족한 커피를 사러 나갔다. 
 
“…로 주시고요 여긴 다 안 들어가니 남는 건 일회용 컵에 담아 주세요.” 출근길 매장과는 다른 사무실 근처 매장에서 내 주문을 받던 이가 눈을 치켜뜨며 ‘우리 프랜차이즈의 정책상 테이크아웃이면 텀블러에 받아 가거나 테이크아웃 컵을 이용해야 하며, 음수용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줄 순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큰 용량의 테이크아웃 컵을 쓰기보다는 작은 음수용 컵을 쓰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했으므로 한 번 더 어조를 바꾸어 ‘나는 … 매장에서 그렇게 테이크아웃했다. 왜 여기는 안 되나?’ 따위 불필요한 말을 했다. 결국 그의 상급자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그 매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어조를 높일 때, 나 외의 게스트와 호스트가 내뿜는 적의와 ‘바쁜 점심시간에 어디서 진상이 와서…!’ 같은 환청을 경험하면서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거의 이를 갈면서 ‘어차피 일회용 컵을 쓸 거면 큰 거 쓰기보다 작은 거 쓰는 게 그래도 낫지!’ 정도의 심정으로 타협해온 나의 불철저한 재활용 생활에 대해 반성했다. 그래도 환경 꽤나 챙긴다는 그 프랜차이즈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가시질 않았다. 더 큰 텀블러가 있어야겠다는 게 그날의 내 결론이었다. 매우 비겁한 결론이었다. 그날의 분기가 가라앉고 나는 커피용으로 하나, 또 커피만큼 카페인이 풍부한 차를 담을 다른 텀블러 하나 해서 두 개의 카페인 탱크를 이용하는 습관을 들였다. 용량과 효과 양면에서 카페인 라이프가 평안해졌다. 
 
나는 진상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날 나와 부딪힌 직원들, 그 청춘들에게 유감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행한 것은 한참 괜찮나 했더니 수도권에 2단계 방역조치가 취해지자 텀블러를 들고 가도 테이크아웃 컵에 커피가 담겨 나오는 일이 다시 시작됐단 것이다. ‘왜 나 같은 이를 위해 머그에 담아주고 자기 텀블러에 따라갈 수 있게 하진 않지?’ 하는 반감이 가시질 않는다. ‘머그를 쓰면 그 머그를 소독해야 하잖아. 귀찮고 위험하니까 그냥 일회용 컵 써. 그래도 텀블러만 보여주면 할인혜택은 주잖아!’ 그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저만 편한 텀블러 고객 우대 정책이 얄밉다. 차라리 텀블러 혜택을 개인에게 주기보다 모아서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게 낫지 않나. 그게 정말 텀블러 이용자에겐 군말 없는 포상이 될 테니까. 역시 나는 그 프랜차이즈의 진상 게스트다. 텀블러 받아주는 동네 커피집으로 갈아타야겠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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