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74] 다시 그 손을 잡아주여야 할 때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2018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역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기소된 13명은 지난 1월 12일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죄와 무죄를 가른 것은 옥시 등이 만들어 판 가습기살균제의 살생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었고 SK케미칼 등이 만들어 판 가습기살균제의 살생물질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라는 차이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 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무죄 판결의 근거로 ‘SK케미칼이 사용한 원료인 CMIT·MIT와 피해자들의 폐 질환·천식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음’을 들었다. 쥐를 이용한 흡입독성 실험에서 이들 물질의 위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연구의 책임자인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박사가 입장문을 냈다. ‘사람의 천식과 실험 쥐에게서 나타난 천식 유사 증상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취지였지 동물실험으로 사람의 천식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그는 반박했다. 판결의 근거인 연구 해석조차 해당 연구자와 재판부 판단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도 ‘무죄’다. PHMG·PGH건 CMIT·MIT건 이 살생물질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고루 사람들이 죽었고 장애를 얻었다. 특정 양상으로 드러난 폐질환자만 피해자로 인정하는 정부의 피해자 인정 ‘좁은문’을 통과한 피해자들도 두 물질의 차이와 상관없이 고루 발생했다. 그런데도 ‘무죄’다. 
 
국회도 재판부 못지않다. 2020년 12월 9일 국회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18개월 연장 처결했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 규명 조사기간 연장은 불허했다. 조직은 살려두는데 그 조직이 할 일은 막는 괴상한 처결이다. 더욱 괴상한 것은 진상 규명 조사 연장 여부를 정부 부처에 물었을 때 사건의 담당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연장에 ‘부동의’한 것이다. ‘다 조사했고 더 나올 게 없다’는 환경부 부동의 답신이 놀라운 건 환경부가 이 사건의 발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능동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유해성과 인체 피해 입증, 검찰의 조사, 시민의 분노가 있을 때만 떠밀리듯 업무를 처리해온 환경부가 무얼 얼마나 열심히 조사했다고 ‘다 조사’할 수 있으며 ‘더 나올 게 없다’ 단정할 수 있을까. 재판부의 무죄 판결은 환경부와 국회의 태도를 판결문으로 바꾼 것일 뿐이란 생각에 참담하다.
 
거리로 내몰린 피해자들이 바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증거이자 진실의 단서다. 피해자들의 손을 시민사회가 잡아주고 그들과 어깨를 겯고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서야 한다. 지금 그 손을 놓는다면 다음 피해자는 다름 아닌 그저 시민이라 불리는 ‘우리, 이 사회의 불특정 다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