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 말·글/ 이지누의 우리 땅 밟기 5/ 이지누

이지누의 우리 땅 밟기 5

내 그것들 낳은 날도
안 잊어버리고 있지…

- 영월 동강에서 만난 뱃사공 최옥란 할머니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봄
이 막막한 산, 그대들 까만 산을 본 적이 있는가. 하나 남김없이 까맣게 불타버린 산, 아니
모두 타버려 오히려 까맣게 보이지도 않는 산. 지금껏 내가 보아 온 그 어떤 폐허의 스산한
풍경과도 비길 수 없는, 오히려 그것을 압도할 광경이 앞에 펼쳐져 있다. 이 어찌할 일인가.
일주일 전만 해도 진달래 지천으로 피어 선홍색,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가슴 속속들이 파고
들던 산야가 하루아침에 까맣게 변했다.
겨우내 움츠렸다가 이제 막 새순 틔어 세상 향해 얼굴 내밀던 새싹들은 흔적도 없어지고,
길섶에 이름을 알 듯 모를 듯 피어나던 풀과 꽃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면도칼
처럼 곤두서 불어오던 휑휑한 산바람, 바닷바람 모두 견디며 푸르름을 잃지 않던 소나무는
차마 거센 불길 견디지 못해 숯덩이로 변해버렸다.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없이 폐허를 거닐면 어느새 신발은 숯덩이처럼 까맣게 변하
고 옷은 검댕이 가득 묻었지만 난 무엇을 찾고 있다. 이 화사한 봄에, 잔인한 4월의 아픔을
남긴 땅을 헤매며 잃어버린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서부터 무엇까지 잃어버
렸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송두리째 사라져버려 무엇부터, 어디에서부터 찾아나가
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양밴이, 색시가 배 타고
시집가는 거 봤나, 가매 타고 왔지…”
그 모진 꼴 봤으니 내 마음조차 스산해 견디질 못하겠다. 어디 편한 곳에 가 맺힌 마음이라
도 풀고 싶어 찾아든 곳이 동강이다. 낯익은 얼굴들, 그들이야 무엇 달라진 것이 있을까.
“배 건네주세요” 소리를 세 번이나 질렀을 때야 겨우 뒤뚱거리는 느지막한 걸음이 보였
다. 쿵, 배가 닿고 나서야 할머니는 나를 알아봤다. “하, 이 양밴이, 한참 안 보이더니만, 또
왔네, 잘 지냈는가 모리겠소.” “나야 잘 지내죠, 할매도 잘 지내셨어요.” “아이구, 내야
맨날 뱃길에 매달리가 죽을 지경이요. 그래 뭐 하로 또 오는가. 어라연 가는 길인가.” “아
뇨, 할매 보고 싶어 왔지…, 할매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던 모양이네.” “보고 싶기는, 누
구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한가. 간혹 자슥들이나 보고 싶지, 그런 거 생각 날 때가 있기
는 한가.” 강 건너에 닿는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할머니는 메밀가루에 묵은 김장김치와 매운 고추 썰어 넣어
부침개를 만들었다. 아마 묵은 김치를 처분할 양으로 이맘때면 늘 그렇게 부침개를 지져 먹
는 모양이다. “한 소대이 잡숴 봐” 하면서 내놓는 부침개는 맛깔스럽다거나 하는 표현들
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막 부쳐낸 것이다.
“할매가 언제 시집 왔다고 했죠.” “그건 지난번에도 물어 보더만 또 물어서 뭐 할라고
그래 물어, 내가 열 여섯 되던 해 구월 시무 아흐렛날에 왔지, 그때가 일본시대랐는데…, 영
감 고향은 여게고 내 고향은 저 짝이여, 신동 운치리라고 가봤다고 했지, 그 운치리 물가에
서 핵교 지나서 그 골짜기 안으로 한참을 더 가야 있어.” “거기도 강이고 여기도 강이고
강에서 강으로 왔네요.” “어데라요. 시집이라고 여 오니까 아주 물만 있고 운치리에는 도
랑물밖에 없지, 그 밑에 납운들까지 내려와야 강이 있는데…, 아이구, 내 여로 시집와서 50
년도 넘도록 어데 좋은 데 한번 못 가보고 인자 다 죽게 생깃어….” “아직 정정하시구만,
뭐 벌써 죽는 이야기를 하고 그런대요. 할매도 참, 그러면 시집오던 날은 배를 타고 왔나,
어떻게 이까지 왔대요.” “아이고, 이 양밴이, 색시가 배 타고 시집가는 거 봤나, 가매 타고
가야지, 나도 운치리서 여 까정 가매 타고 왔어.” “그럼 가마 탄 채로 배를 탔나요.”
“하하, 배를 안 타고 걸어서 왔다니까, 강 건널 때만 잠깐 배를 탔지, 전부 걸어서 여 까정
왔단 말이라.”

“물레재를 가매 타고 넘었지,
벼르메에서는 떼재를 넘고…”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가마 타고 온 길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디로 해서 왔는지 기
억나세요.” “그기 인자 나이가 가물가물하고 세월이 벌써 육십 년이 다 됐는데…, 시집 오
던 날, 새빅이라, 요새로 하믄 한 다섯 시쯤 되나, 식전에 일찍 밥 먹고 가매꾼 네 명이 그
걸 메고 나섰는데, 여 오니까 저녁때가 다 됐어….” “그래도 좋으셨겠네, 가마 타고 산길
도 가고…, 시집가니까 좋았죠.” “하이고, 이 사람아, 말도 말어. 가매꾼들도 그거 메고 여
까정 왔다가 꼼짝도 못하고, 사흘 동안 두디리 맞은 거 맨치로 여기저기 쑤신다고 하미 여
서 며칠을 쉬다 가는데 다리를 상구 절구 다닛어, 나는 또 시집이라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
한테로 와 놓으이 맴도 안 편코, 가매꾼들만 힘든기 아이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도 죽기
보다 쪼끔 덜하지 죽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놈의 가매가 가마이 가나, 금방 비탈길 올라가민
몸이 뒤로 자빠지는데 그대로 자빠질 수가 있는가. 팔을 뻗대가지고 앞에 뭐라도 붙들고 용
을 쓰고 앉았다가 또 가매가 내리갈라 하민 까꿀러 코방이라도 찔라하고, 그기 어데 한두
번인가 하루 종일 그 좁은 데 들어앉아 그래 용을 써 놓으이 가매꾼들 힘든 거 보다 더 힘
들민 더했지, 덜하진 않았어, 그런 시집 두 번 가라고 하민 또 안 가고 싶지…, 죽을 뻔했지,
그런 데는 처음 봤어.” 혹, 동강의 뼝대 위로 난 오솔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할머니는
그 길을 가마 타고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겨우 한 사람 걸어다닐 만한 그 길을 가마꾼
넷이서 걸었으니 그들도 힘들었을 뿐더러 그 안에 앉았던 할머니 또한 힘들기는 그들 못지
않게 힘들었을 것이 상상이 된다.
“운치에서 여를 올라믄, 그때는 요새 있는 저런 큰 길이 없었어, 전부 강 옆으로 재를 넘어
댕깃지, 운치에서 물레재라고 있어, 고성에 성이 하나 있는데, 그 아래로 소골이라는데 옆으
로 재를 넘는데, 거서 강을 건너 재로 올라가면 칠족령이고, 강을 안 건너고 재를 넘으민 그
기 물레재라, 그 재를 넘으민 어데냐 하믄 소사라, 거서 강을 처음 건너고 벼르메로 가서 다
시 강을 건너 떼재를 넘으민 여 문산인데, 말로 쉽지 그 길이 전부 산길인데다가 요새는 안
가봐서 내가 모리지만 내 시집오고 나물 캐러 다닐 때도 좁은 소로 길이라, 그 길로 가매를
타고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지….”

“그것들 여섯, 전부 내 가슴 속에
넣어놨는데…”
이야기 도중, 열어놓은 문으로 누군가가 들여다보더니 지나가고 할머니가 흘깃 시계를 보더
니 “버스 시간이 됐네, 그래.” 하면서 아무 말 없는데도 그이를 따라 나섰다. 마을에 사는
이가 강을 건널 모양이다. 앞서 가는 그이를 보고 할머니가 묻는다. “아, 어데를 가라고 이
래 늦게 나서, 영월 갈라고….” “예, 뭐 그냥 잠깐 볼일이 있어서 댕기 올라고요. 막차 타
고 들어올 꺼래요.” 할머니는 문산 마을의 뱃사공이다. 아니 사공이라고 하기보다는 요즈음
은 묶어놓은 줄에 의지해 배를 움직여서인지 그냥 배 보는 사람 혹은 배 부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흔히 동강하면 섶다리를 떠올리겠지만 문산에는 겨울에도 다리가 놓이지 못한다. 운치
리나 소사마을에서 할머니가 벼르메라고 하는 연포마을로 넘어가는 곳은 늦가을이면 물도
줄고 깊이도 깊지 않아 다리가 놓이지만 문산리 앞을 흐르는 강은 물도 넓고 깊이도 사람
두 길이 넘어 한번도 다리가 놓인 적이 없다.
강 건너까지 다녀온 할머니는 줄에 널어놓은 빨래를 개키면서 “하이고, 이놈의 날이 낮에
는 여름 같고, 해만 지민 추워서 불을 때야 하고…”란다. 바람에 떨어진 고쟁이를 강물에
담궈서 주물주물 행궈내는 곁에 앉아 “할매, 배 보는 거 힘들지 않아요” 했더니 “그걸,
말하믄 뭐 하나” 해놓고 한참이나 있더니 “오죽, 노인네 둘이 할 게 없으니 이거라도 하
고 있겠나. 묵고는 살아야 되고, 농사는 없고, 이거라도 있으이 그나마 사는 기지, 힘들어도
할 수 없지 어째요. 마을에 배 볼만한 사람도 없고…, 나이가 들어도 우리 같은 늙은이라도
있으니까 이거라도 하자, 농사 하민서는 정신이 없어서 배 보지도 못해요. 할 일도 없고 그
래야 배 보지, 뭐라도 할 일 있는 사람들이 뱃나들에 나와서 하루 종일 있을 수가 있는가”
한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생선장수에서부터 돈 되는 일이라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한
다. 지금이야 강 건너에서 하루 네 번 들어오는 것이긴 하지만, 버스를 타면 영월까지 편하
게 데려다 주지만, 할머니 젊은 시절에야 걸어서 영월까지 가는 데만 네 시간은 족히 걸렸
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는 동안 여덟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지만 여섯은 그이 가슴
속에 꼭꼭 묻었다고 한다. “그때, 이런 산골에 무슨 약이 있는가, 애기들 아프다고 하민, 뽕
나무나 그런 데 있는 벌거지를 캐다가 참기름에 볶아서 믹이고 그랬는데, 에미가 무식하니
이런 거 저런 거 모르고 독한 약 잘못 믹이믄 죽고, 그거 겁나서 약도 못 믹이서 또 죽고,
그래저래 이제 둘만 남았어. 그거라도 남았으니 다행이지. 우린 새끼 복이 없어 그래 된 거
그걸 우예요. 할 수 없지. 그것들 여섯은 전부 내 가슴 속에 넣어놓았는데 그것들 때문인지
요새 그래 가슴이 아파요. 기침도 자주 나오고, 못난 애미 잘못 만난 죄지 그것들이 뭔 잘못
있어서 세상에 나와 눈도 못 떠보고 죽고, 걸어보지도 못하고 죽고, 그것들 생각하면 잠이
안 오지, 그래 오래돼도 내 그것들 낳은 날짜 까정 안 잊어버리고 산다니까….” 할머니 이
야기하는 모양을 보다가 어라연에 훌쩍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라연 가는 길, 개죽이엔 지금
철쭉이 한창이다. 개구리 바위도 그대로이고, 한 시간여, 아무도 없는 어라연의 하얀 적막
속에서 삶을 생각했다. 물론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날 밤, 나는 밤이 늦도
록 메밀 부침개에 소주 마셔가며 할머니의 팍팍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글·사진 / 이지누 nophoto@iconotext.com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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