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 말·글/ 편집자의 말- 진보정치와 시민의 만남을 위하여/ 장재연

편집자의 말

진보정치와 시민의 만남을 위하여



한반도 동쪽이 산불로 타버리고, 농촌에서는 가축들이 구제역으로 연이어 쓰러지고 있던 그
시간, 선거열풍이 한반도 남쪽을 휩쓸고 지나갔다. 국회로 진출하려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도 부패정치를 퇴출시키기 위한 낙천·낙선 운동에 나섰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낙선대상자의 약 70%를 탈락시키는 성과를 거두면서 국
내외 언론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총선시민연대는 한국의 시민사회의 성숙의 주요한 계기이
며 향후 한국사회 개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자체 평가하였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
하고 이 운동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총선시민연대 최고 지도부의 겸손한 자세는 무척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필자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지하는 유권자가 일부나마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유효표의
몇 퍼센트를 넘기지 못하면 정당이 해산된다고 하니 한 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한번도 기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무척 곤혹스러웠다. 살고 있는 지역구에 지지정당이 후
보를 내지 못했고, 그나마 낙선 대상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낙선 대상자가 있었다 하
더라도 그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비슷해 보이는 다른 후보에게 투표할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대안 없이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라는 권유는 기성정당 중의 하나를 지지하라는 강요이고,
이것은 어쩌면 대안 세력의 성장을 저해하고 기존의 모순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이번 낙천·낙선운동의 한계로 지적된 대안 없는 운동이라는 점이
실감나는 선거였다. 그런데 대안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과연 우리에게 대안은 없었을까?
정당들의 비민주적 공천과 지역감정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소위 386
후보들이라는 젊은 후보들마저 눈감았던 이런 문제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있었다. 헌법이 요
구하는 대로 당원들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후보들과 편하게 당선될 수도 있는 지역
을 버리고 지역감정에 온몸으로 부딪쳤던 후보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당선가능성이 높았
던 몇몇 후보마저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지 못하였다. 정치의 전면적 개혁은 어렵더라도 이
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당선시킬 힘이 우리에게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다 보니 ‘총선시민연대가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될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놀랍게도 시민단체의 중립성, 대안으로서의 부적절함 등의 이유를 들
어 전면적인 부정을 나타내는 소리조차 들린다. 지역감정과 관련해서는 초기에 한바탕 홍역
을 치렀기 때문에 조심스러움이 이해가 되지만 진보정당의 후보에 대한 태도는 정말 아쉬움
이 크다는 얘기인 것이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지역에 따라서는 무조건 당선이 보장되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
서도 당선 확률이 50%에 육박하게 된다. 그런데 기존의 정당은 허깨비 당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민주적인 상향식 후보공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아무리 잘난 사람도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정당의 지도부 눈밖에 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
한 이치이다. 이런 문제점이 보스정치의 원인이고, 결국은 지역주의를 확대·재생산하는 근
본적 원인이 되고 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인 당원들이 참여해서 민주적으로 상향식 공천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는 정당
이 있다면, 그 정당의 강령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그런 노력과 과정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명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무기로 한다는 시민단체가 가장 떳떳하
게 공개적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관계자들의 ‘진보정당의 후보를 지지
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정치적 부담이 커서 불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시민단체의 진보정당 지지가 총선시민연대의 총선캠페인에 긍정적으로 작
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인식은, ‘우리는 왜 시민운동을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나라 진보정당은 아직 관념적 과격성과 구호의 낭비적 표현 등 대중성에서 많은 문제
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시민단체가 이념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이번 선거 참여운동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운동이 아니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도덕성 평가를 하는 운동이었다면 올바른 공천과정을 통해 후보가 선출되는 과
정을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진보정당이 여러 차례의 실패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면서도 조금씩 현실정치의 대중성을 획
득해 나가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출마지역에서의 지지율이 15대
총선 때 6%에서 16대의 13%로 두 배로 증가한 사실로 나타났다. 이런 성장은 시민운동의
외형적 확산 못지 않게 언젠가 근본적 변화의 동력으로 발전할 것이다. 시민운동 스스로 정
치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한계를 고려한다면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을 돕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에 앞서 시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성공한 시민
운동의 경험을 진보정당들에게 전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시민운동과 진보운동과의 연대
를 어려운 과제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시민운동과 기성정치권과의 간격보다야 넓지 않으리
라는 기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장재연 jangjjy@madang.ajou.ac.kr
환경보건 및 산업보건 전공
현재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부교수
사회적 환경문제의 첨병인 노동환경문제에 관해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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