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살리고 지역 살리는 길 찾아 나선 장항 _ 염형철



장항국가산업단지는 80년대 후반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던 갯벌간척계획들 중의 하나로 세상에 등장했다. 2730만 평의 갯벌을 매립해 기계, 자동차, 화학 등을 유치하는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 타당성 검토가 미진했던 계획은 발표만 된 채 진행되지 못했다. 예산부서의 반대가 컸고, 사업부서조차 추진 의지를 강하게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사업성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산업단지 규모는 순식간에 400여만 평 수준으로 축소됐고(90년), 그나마도 잊혀지고 말았다.
게다가 96년 시화호 오염이 사회 이슈가 되고, 이어 새만금 간척 사업 논란이 커지면서 새로운 계획들은 거론되기도 힘들었다. 또한 1987년(3203.5㎢) 이후 전체 해안 중 20.4퍼센트의 갯벌이 간척되고, 자연해안선(1만1914km)의 3분의 2가 개발되면서, 서남해의 어업이 심각하게 타격받은 것이 확인됐다. 1990년 이후 서해연안 어획고(52만 톤)는 47퍼센트나 감소했고, 수산물 수입량은 2000년 이후 5년 동안 69.3퍼센트가 늘었다. 2005년 6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정과제회의에서 정부가 자연해안과 갯벌의 순손실을 방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은 불가피한 결론이었다.

장항산단의 딜레마
그러나 정부가 장항산단 계획을 추진도 않고 철회도 않고 있는 동안 서천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국가가 추진하는 지역지원 사업들은 장항산업단지를 핑계로 외면됐고, 시간이 늘어지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기회조차 빼앗긴 것이다. 꼭 장항산단 탓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십수 년 동안 인구의 60퍼센트가 빠져 나가고, 지역의 낙후도는 충남의 지자체 15개 중 14위를 기록할 정도가 된 것이다. 때문에 2003년부터 지역의 정치인들과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산업단지의 즉각 착공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집회, 농성, 단식 그리고 등교거부까지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서천군민들의 분노는 격렬하게 분출됐다. 그리고 주민들의 절박한 주장들은 사회적으로 동정을 얻었고,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지를 방문해 사업추진을 적극 검토하겠다(2006년 10월)고 약속까지 한 것은 이러한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천의 사정이 딱하다고, 정부가 이미 밝힌 ‘갯벌과 해안선 보전’에 대한 정책을 바꾸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장항산단과 유사한 간척사업들 수백 건이 사업승인을 요청할 태세고, 이를 둘러싼 갈등을 회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을 허용한다면 남은 갯벌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고, 어류의 산란과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수산업도 붕괴될 것이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절차 상 갯벌매립이 불가능하다는 환경부가 결정을 바꾼다면, 환경부의 행정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갯벌 정책에 한정된 논란이 아니라 각종 개발정책과 지역의 무분별한 요구에 대해 정부가 대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 장항산단은 서천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을 기회조차 빼앗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어메니티 서천 2020 프로젝트
결국 시대의 요구와 현행 법률의 제한 속에서, 서천 장항국가산업단지 계획은 서천의 갯벌을 보전하고, 지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제 3의 대안을 모색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환경연합을 비롯한 단체들이, 그리고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의 정부 기구들조차 이 흐름에 동참한 것은 서천의 요구를 반영하고 갯벌보전에 대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환경부가 지난해 말 ‘국립생태원’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해수부가 ‘해양생물자원관’으로 의기투합하면서 대안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그리고 국무총리실이 서천주민들의 ‘산업단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내륙 산업단지 계획’을 덧붙이면서 정부의 대안이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대안, ‘어메니티 서천 2020 프로젝트’는 서천을 ‘생태, 교육, 관광 도시’로 가꾸기 위해 정부에서 약 8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1조1천억 원 수준의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태연구 및 교육 명소로서 ‘국립생태원’을 조성하고(환경부), 해양생태자원의 보전과 해양환경교육·연구의 중심지로 ‘해양생물자원관’을 건설하며(해양부), 에코벤처단지와 생태관광휴양단지 그리고 에코시티 등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대안이란 게 한참이나 때를 놓쳤고, 온갖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던 정부의 계획인 만큼 환영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설움을 돌아보면 서천군민으로서는 마음이 선뜻 내키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계획이 환경영향평가를 넘지 못하고 있고, 공단 수요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속에서 무작정 공단 착공만을 주장하는 것도 최선이라 할 수 없다. 정부가 예산 계획까지 마련해 발표했는데도,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것 또한 맹목적 반대라고 비판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일부 인사들은 대안 검토를 부정한 채, ‘산업단지를 즉각 착공하라’거나 ‘차기 정권으로 넘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밀어주겠다던 장항산단이 표류하게 된 것은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음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서천을 위한 주장이라기보다 장항산단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 지역 발전과 환경보전의 상생을 위해 서천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서천의 미래를 결정하는 길
이제 서천의 발전과 갯벌보전이라는 사명을 위해, 실현 가능한 제 3의 대안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서천이 바라는 것이 꼭 ‘산단’이 아니라, ‘서천을 발전시킬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앞날을 알 수 없고, 당장 시작하더라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장항산단 계획에서 벗어나 낙후된 지역을 일으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천군청이 정부 대안의 검토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다.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만 보였던 지역발전과 환경보전을 상호 보완과 협력의 관계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극적 검토를 통해 정부의 제안을 부정하는 핑계를 찾는다거나, 일부 구간의 갯벌 매립을 추진함으로써 본래 취지를 훼손하려한다는 지적들이 존재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특히 대안 논의가 군청의 담장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문제다.
서천의 미래를 결정하는 길에서 서천의 모든 주체들은 각자의 권리가 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절차를 거칠 것인지 진지하고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 안을 공개하고, 가능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의견과 지역의 특성을 반영시킬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개발의 이익이 외부 투자가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대책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들도 의견을 밝히고 조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서천군이 결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어 달의 시간이 흘렀고, 사회의 관심은 서천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 서천군의 결단 그리고 서천주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의 대안이 갈등을 풀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서천을 아끼는 여러 주체들의 관심과 제안들이 보태진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지역 발전과 환경보전의 상생 모델이 서천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염형철 yumhc@kfem.or.kr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처장
제작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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