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불사, 남이 하면 수행환경 훼손? _ 정성운



몇 년 사이 환경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불교계가 한가운데 서 왔다.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반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반대운동 등에서 보여준 수경스님과 지율스님의 행보가 그렇다. 삼보일배, 단식정진을 행한 두 스님의 활동은 자기참회를 통한 호소의 방법으로 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문제 발생의 원인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자기반성에 바탕한 이러한 태도는 환경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을 해소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불교계는 환경문제에 있어 정반대의 이유로 주목을 받기도 한다. 반환경적 대형 건축불사가 바로 그것인데 최근 해인사에서 추진하는 신행문화도량 신축계획이 대표적 사례다. 불교계는 환경문제에 있어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하면 불사고 남이 하면 수행환경 훼손이냐”는 세간의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 건축불사에 대한 비판은 이번만이 아니다. 한때는 대형불상 조성이 논란이 됐었다. 신흥사, 동화사, 석굴암의 사례에서도 환경적·문화유산적·종교적 측면에서 문제점이 제기됐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위치함으로써 대형 건축불사는 산지와 산림의 훼손을 불러온다. 더구나 그곳이 특별히 보존해야 할 국립공원구역이어서 환경훼손의 문제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또 사찰엔 많은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에 새로 계획되는 건축물이 기존의 문화유산을 훼손 또는 그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그치지 않는다. 불사 기획 단계부터 타당성 검토를 소홀히 하다보니 종교적 측면에서도 기복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대형 건축불사의 정점,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해인사에서 추진하는 신행문화도량 신축계획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더욱이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종찰이며, 선원과 율원이 있는 수행도량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해인사에서 대형 건축불사를 계획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대형 건축불사 논란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신행문화도량은 그 규모부터 만만치 않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불과 750미터 떨어진 부지 8600여 평에 200억원을 들여 1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법당을 비롯해 7동의 건물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지하주차장을 포함해 연면적 8천여 평 규모이다. 이 정도이니 ‘제2 해인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해인사의 이 같은 추진 계획에 대해 불교계 16개 단체는 지난 6월 <해인사의 관광도량화 중단과 바른 불사문화 정착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신축계획의 전면적인 재고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신행문화도량은 불교신자들과 사찰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사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신행문화도량 신축부지는 옛 해인초등학교 터이므로 추가 산림훼손이 없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립공원 내에 부지 8600여 평, 연면적 8천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 건축을 할 경우 국립공원 보존에 악영향을 끼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공원은 관리부서가 건설부에서 내무부, 다시 환경부로 이관되었듯 개발에서 보존으로 정책이 선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나대지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국립공원에 대한 정책변화와 사회적 요구를 외면하는 처사다. 이는 정부 및 개발사업자의 개발계획을 막을 불교계의 명분과 도덕성을 잃게 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팔만대장경 보존에도 악영향
대형 건축물 건립으로 인한 2차 환경훼손에 대한 예측과 대책이 없는 것 또한 큰 문제이다. ‘신행문화도량 계획설계’에 따르면, 연 이용인원 10만 명, 250대의 주차공간이 들어선다. 대형 시설물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유인효과를 일으킨다. 따라서 깊은 산중에 자동차 운행이 대폭 증가할 것이고 대기오염은 필연적으로 악화된다. 도로의 필요성도 잇따라 제기될 것이다.

가야산의 대기오염은 환경훼손과 함께 팔만대장경과 판전의 보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판은 750년이나 보존되어 왔다. 경판과 판전의 보존 비결은 가야산의 바람과 온습도에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신행문화도량의 건립에 따른 탐방객과 자동차 운행의 증가는 해인사 일대의 온습도와 숲 생태계 변화의 원인이 된다. 판전과 대장경은 미세한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연한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주 작은 변화에도 큰 훼손을 입을 수 있다. 또한 문화유산 인근의 대형 건축물 신축은 문화유산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 인근이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여 그 존엄성이 훼손된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이 가르침도 해인사에는 반면교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물질의 소유를 제한했다. 육신의 유지와 정신활동을 위한 최소한이 그 한도였다. 삼의일발(三衣一鉢, 세 벌의 옷과 밥그릇 하나), 탁발(수행자가 민가에 들러 밥을 얻는 행위) 등이 그러한 전통의 상징적 표상이다. 밥 먹을 때 암송하는 공양게송도 그렇다. “온갖 정성 두루 쌓인 이 공양을 / 부족한 덕행으로 감히 받누나 / 탐심을 여의어서 허물을 막고 / 육신을 지탱하는 약을 삼으며 / 도업을 이루고자 이제 먹노라”

중생의 삶과 동떨어진 대형건축불사
월드워치연구소에서 펴낸 『지구환경보고서 2003』(도서출판 도요새)에 「지탱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이란 글이 있다. 필자인 게리 가드너는 여기에서 △윤리관의 제공 △도덕적 권위 △신도의 수 △물질적·재정적 자원 △지역공동체의 형성 등 다섯 가지 관점에서 종교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미국 천주교의 자원봉사활동과 불교의 가르침에 기초한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 등을 예로 들어 지탱가능한 세계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문했다.

지금의 우리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과 그분의 삶,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에서 너무 멀어져 있다. 대웅전 앞까지 자동차 길을 닦아놓았고 절 마당엔 자동차가 즐비하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반환경적 건축불사를 또 행하려 한다. 가난이 너무 힘겨워 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는 중생들의 가혹한 삶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중생들의 귀의처가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육조집경>이란 경전에 상비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나는 상비(常悲)란 이름의 보살이었다. 그 보살은 항상 울고 다녔다. 왜냐하면 때는 무불(無佛)의 시대였고 또한 무법(無法)의 시대였다. 경전은 다 훼손되고, 청정한 수행을 하는 사문도, 성인도 없었다. 보살은 오로지 간절하게 부처님을 만나 뛰어난 가르침을 듣기를 간절히 원했으나, 세상은 혼탁하여 바름을 버리고 악한 것으로만 치닫고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항상 낙담하여 울고 다닌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으로의 회귀와 전통의 회복이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 길은 이미 열려 있으되 가지 않으려 한다. 바른 길을 가도록 권고하고 비판하는 일은 불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서 불교가 자기 역할을 하도록 바라는 상비보살의 마음을 지닌 이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성운 woon1654@korea.com
불교환경연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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