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경제성장 반대하냐?

헨릭 입센(Henrich Ibsen)은 널리 알려져 있는 19세기의 노르웨이 작가이다.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는 그의 작품 가운데 『인민의 적』(An enemy of the people)이란 재미있는 단편이 있다. 

노르웨이의 어느 유명한 온천지역이 지리적 무대인 이 단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온천으로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듦으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평화로운 지역이 있었다. 어느날 이 지역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이 지역의 평화는 순식간에 깨어졌다. 널리 존경을 받고 있던 스탁크만(Stock-man)란 의사가 그 고장의 온천수가 독으로 오염되어 피부병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치명적인 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실험결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 지역은 삽시간에 큰 충격과 혼란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건의 주인공인 스탁크만 의사를 비난하고 실험결과를 발표한 행위에 대해 항의가 쏟아져 들어왔으며 신변위협까지 느낄 상황이 전개되었다. 

여론의 관심은 ‘온천물이 정말 오염되었는가, 아닌가’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천수 오염 특별대책팀 구성을 촉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론은 한결같이 이러한 사실이 다른 지역까지 알려지면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큰 파국에 이르고 망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또 이런 엄청난 사실을 발표한 스탁크만 의사의 양식과 애국심이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스탁크만 의사에 대한 성토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마침내 지역회의가 열렸다. 지역 지도자들은 일방적인 여론에 의지하여 스탁크만 의사를 질타하고 갖가지 선동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결국 지역회의는 스탁크만 의사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치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온천물이 오염되었다는 ‘불순한 말’을 더 이상 발설하는 자는 처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스탁크만이 “그래도 온천수는 독으로 오염되었다”고 외칠 때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선동에 따라서 “좌경이다! 좌경이다!”라고 외쳐대면서 스탁크만의 소리를 잠재웠다.


스탁크만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나라

이 이야기는 물론 입센의 작품의 이야기(fiction)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 나라다. 

지금부터 십여년 전에 어떤 대학원 졸업생이 우리 나라의 공해실상을 조사하여 석사학위논문으로 완성하고 심사용으로 몇 부를 찍어 제본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모 정보기관에 불려가게 되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출두한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자신의 논문 사본을 그곳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를 아연실색하게 한 것은 그곳의 정보요원으로부터 그 논문을 취소하고 파기하라는 강요를 받은 사실이었다. 

대학원생은 “너는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을 반대하냐?”고 묻는 정보기관원의 강압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만일 그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경우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에 결정적인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 우리 나라가 잘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만이 그러한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 젊은이는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연구논문을 파기하고 석사학위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 이야기는 입센의 소설 『인민의 적』과 완전히 똑같은 구조를 가진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 석사학위 후보생은 스탁크만 의사와 정보기관원은 선동적인 지역 지도자들과 같은 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사례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96년에 여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여천시는 공해실태조사보고서를 입수하여 이미 여천공단의 공해실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발표될 경우, 산업 전반에 미치는 후유증과 공단지역 주민들의 이주에 소요될 재원 마련이 난감하다는 점을 우려해 즉각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결국 언론에 기습적으로 보도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애초 이 공해실태보고서 발표를 유보했던 여천시 당국자의 판단은 위의 정보기관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어 있는 공해문제는 숨겨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공해가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경에 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그 공해로 인하여 죽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금수강산이고 우리 자신들이라고 할 때 누구를 위해 공해실태를 은폐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우리 나라의 공해가 심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어느 쪽이 과연 나라를 위하는 길인가? 그 정보기관원에게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동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위해 이로운 것이냐 하는 것을 물어봐야 한다. 어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라도 다 정당화될 수 있고 다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인가? 아주 반동적이고 파괴적인 애국심과 민족주의, 예를 들면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동조 같은 ‘악마적’ 지도자들이 외치는 국가사회주의식 민족주의나 황국주의와같은 극우 민족주의나 애국심은 민족을 위해서는 물론 전 세계인류를 위해서 매우 파괴적이고 해로운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할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살 길인가

우리 나라를 위하는 자가 누구인가? 누가 국민의 적이고 친구이며 애국자이며 건전한 ‘경제성장’을 원하는가? 이성을 가진 지도자이고 당국이라면 우리 나라의 공해실태를 개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여 더 이상 <환경을 포기한 경제성장이 국가사회와 민족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미신을 혁파해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는 인간의 삶의 양과 질의 문제와도 관계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 인간의 의미가 소유인가 존재인가 하는 문제 등과도 관계되는 문제이다. <경제성장만이 최선이며 우리의 살 길>이라고 단정하는 논리는 <인간의 가치와 행복이 오직 물질에 있고 도덕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상관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것은 사는 길도 아니고 참된 길도 아니다. 그것은 함께 죽는 길이고 함께 망하는 길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홍근수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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