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중금속 괴담, 진짜일까?

입술용 화장품에 납과 카드뮴 등의 중금속이 들어있다는 ‘괴담’은 한 번씩 회자되는 이야기였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에 중독되는 것처럼, 키스를 할 때마다 립스틱의 중금속에 중독되기에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조심해야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작년 미국의 버클리 대학교 아시아 연구소에서 ‘립스틱 괴담’을 검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32개의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수거해 9종의 중금속을 시험한 결과, 대부분의 제품에서 고농도의 티타늄, 알루미늄, 망간이 검출되었다. 또한 아이들의 지능을 떨어뜨리고 신경 독성이 있는 납은 조사대상의 약 75퍼센트 제품에 들어있었다. 티타늄과 알루미늄은 자전거 본체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금속인 줄만 알았는데, 입술용 화장품에도 들어있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미 식약청은 티타늄과 알루미늄은 화장품에서 규제되는 성분이 아니고 납은 검출허용한도인 20ppm를 초과하지 않으므로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납과 카드뮴은 불검출 하지만 알루미늄 농도 높아

 
미국의 검출결과를 접한 네티즌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립스틱에 대해 궁금했다. 조사대상으로 알려진 브랜드가 우리에게는 낯설거나 많이 사용되지 않은 제품이라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화장품의 실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국정조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으나 이후에 식약처가 실태 조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안전한 화장품 캠페인을 진행해 온 여성환경연대는 시중에 판매중인 립스틱을 수거해 미국과 똑같은 중금속 검출시험을 하기로 했다. 2013년 상반기 입술용 화장품 중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크리스찬디오르, 헤라, 맥, 베네피트, 샤넬이다. 이들 매장에서 인기 많은 라인을 추천 받아 그중 붉은색 계열의 제품을 골랐다. 원래 해당 브랜드의 립글로스도 시험할 계획이었으나 립스틱 하나에만 3만 원이 넘어 립글로스는 구입하지 못했다. 그 대신 로드샵 매장 수가 가장 많은 미샤와 페이스샵에서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구입했다. 이렇게 총 7개 브랜드, 10개 제품이 조사대상으로 선택되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알루미늄, 카드뮴, 코발트, 크롬, 구리, 망간, 납, 니켈 분석을 의뢰했다. 얼마 후 연구소 팀장님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분석결과를 전했다. “가장 우려했던 납과 카드뮴이 모든 제품에서 불검출되었는데 이를 어쩌냐는 것이다! 가난한 시민단체의 사정을 잘 아는 연구소는 검출결과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비싼 시험비에 지레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진심으로 ‘중금속 립스틱 괴담’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미국에 비해 안전하다고 판명이 났지만 제품에서 일부 중금속이 발견되었다. 물고기에게 자전거가 필요하지 않듯 알루미늄과 립스틱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알루미늄은 모든 립스틱 제품에 고농도로 들어있었고 미국에 비해 6.7배 정도 높았다. 알루미늄은 붉은 색을 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피부와 눈에 자극을 유발하고 흡입 시 폐 이상과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음용수에 들어있는 알루미늄 섭취에 대한 연구는 알루미늄과 알츠하이머 질환과의 연관성을 우려한다. 특히 여성들이 하루에 립스틱을 바르는 양으로 계산했을 때 알루미늄 노출은 ‘일일허용섭취량(ADI)’을 훌쩍 뛰어넘었다. 성인 여성은 일일허용섭취량의 약 4배, 메이크업을 자주 수정하고 더 많이 바르는 십대 여성은 8배나 높게 나타났다. 입술에 칠한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를 모두 섭취하지는 않기에 실제 알루미늄 섭취량은 이보다 낮겠지만, 그럼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망간은 10개 중 8개 제품에서 검출되었는데, 만성적으로 중독되면 두통과 피로, 불면을 일으킨다. 알루미늄과 망간은 현재 화장품 안전기준 상 규제 자체가 없는데, 색조 화장품 모니터링 결과 지속적으로 검출이 되므로 관리가 필요하다. 유해성이 높아 화장품 법규 상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지정된 크롬도 모든 제품에서 미량 검출되었다. 하지만 크롬은 건강에 위해한 6가 크롬과 건강 영향이 별로 없는 3가 크롬이 있고 지금까지 결과로 미루어보아 3가 크롬일 가능성이 높다. 독성이 강한 비소도 검출되었지만 법에서 정한 ‘검출허용한도’는 넘지 않았다. 검출허용한도란 인위적으로 첨가하지 않았으나 제조나 보관 과정, 포장재 등에서 비의도적으로 오염된 경우 혹은 기술적으로 완전히 제거가 불가능한 경우에 그 기준을 정해 놓은 것을 말한다.
 
 
여성환경연대가 중금속 조사를 의뢰한 립스틱들 ⓒ여성환경연대
 

시민들은 성장하는데 정책은 제자리

 
이번 결과를 토대로 식약처의 국민 신문고에 등록했더니, 채택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루미늄과 망간은 참고할 외국의 법적 기준이 없으므로 기각하고, 알루미늄 노출량은 립스틱을 통한 섭취량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알루미늄이 특히 높게 나왔으므로 섭취량을 추정해보거나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규제를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은 없었다. 
 
국내외 시민단체와 소비자 그룹은 입술용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과 달리 섭취가 가능하고 피부가 얇은 부위에 바르므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특히 메이크업 시기가 빨라져 십대 때 화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50퍼센트가 넘으므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여전히 도돌이표일 뿐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번 립스틱 중금속 조사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기금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정책은 느리게 변하지만 관심 있는 시민들께서 모니터링을 이끌어주었다. 이런 힘들이 모여 결국 지구와 우리 몸을 살리는 실천을 가져오지 않을까? 그전까지 메이크업 횟수를 줄이고 안전한 제품을 사용하시기를 권한다.
 

 


고정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 팀장 kokumsook@gmail.com

 

채소 ‘비트’로 집에서 간단하게 립틴트 만들기

❶ 비트를 잘 씻어 깍둑썰기로 잘라준다.
❷ 냄비에 중탕으로 글리세린과 비트를 넣어 10~15분간 끓여준다. 글리세린을 많이 넣으면 색이 연하고, 비트를 많이 넣으면 붉은 색이 진하다. 취향에 맞춰 양을 조절하면 된다. 식물성 글리세린은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❸ 체에 걸러준 다음 소독한 용기에 넣어 사용한다. 한 달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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