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일구는 희망과 도전 - 환경운동연합 제 4차 생태사회포럼 후기

‘역사는 과연 진보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아도르노는 인류가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하였다. 인간에게 있어 자연은 신비와 공포의 미지였지만, 자아를 주체로 내세워 타자를 객체로 바라본 ‘계몽’이 자연을 소외시키고, 타인을 소외시키고, 자기마저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상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자연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과정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견하였다. 어쩌면 아도르노에게 있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재앙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와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 것 같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현명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지도 몰랐으며, 어머니와 결혼할지도 몰랐던 무식한 현자,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몰랐던 자였다. 

환경연합 생태사회포럼은 이러한 위기로부터 희망의 씨앗을 찾기 위해 경제, 정치, 문화 등의 분야를 아울러 탐색해왔다. 환경연합 제4차 생태사회포럼은 느리지만 행복한 희망의 씨앗을 ‘마을’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마을운동(풀뿌리운동, 대안사회운동, 성찰담론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가나 시장이 못해주면 우리가 합니다.”

“누구도 이렇게 될지 몰랐습니다. 우린 그저 필요한 것만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마포구 성미산은 ‘마을 만들기 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학계와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보도되어 왔다. 특히 ‘마을’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져버린 거대도시 서울에서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미산 마을극장의 유창복 대표는 자신들의 성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아이들을 생태적으로 잘 키우고 싶어 공동육아를 고민하다 어린이집을 만들었을 뿐이고 아이들이 자라다보니 유치원을 만들었을 뿐이고 학교에 보내야 하니까 대안학교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미산 마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경제 및 생활 공동체로 도약도 모색했다. 2001년에 설립된 마포두레생협은 주민들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지금 현재 마포구 성미산에는 수많은 마을기업과 마을축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車병원’, ‘동네부엌’, ‘문화공간’, ‘작은 나무’, ‘마포 에프엠’, ‘유기농 먹거리’, ‘장애인 자활센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창복 대표는 “우리는 국가나 시장이 못해줄 것 같은 것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고자 협동하였고, 그저 다 잘될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졌을 뿐입니다.”라며 “특히 주민들이 생활 속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의견을 표현하고 마을 일에 결합하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기를 준비하고 있고 또한 스스로 실제로 결합하는 일이 가능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관계를 만드는 화폐, <한밭레츠>의 두루

대한민국의 화폐는 ‘원화’다. 하지만 <한밭레츠>의 화폐는 ‘두루’다. ‘두루’는 대전에 있는 품앗이 공동체인 <한밭레츠>의 회원들이 물품이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현금 대신 사용하는 공동체 화폐의 이름으로 ‘두루두루 널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밭레츠>의 조병민 씨는 “돈이라는 것은 교환을 위한 수단입니다. 돈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지역통화는 경쟁과 대립이 아닌 관계 중심의 화폐를 만들기 위한 고민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지역화폐는 지역사회 구성원 간의 직접적인 교환 관계를 통해 상호 간의 연대와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으며, 제한된 지리적 영역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지역중심의 경제활동은 비용절감적이고 환경친화적 경제에도 기여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밭레츠>의 1두루는 대한민국의 1원과 맞먹는다. <한밭레츠>의 회원이 되면 ‘두루’를 사용할 수 있으며 현금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데 30퍼센트 이상은 반드시 두루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물건이 있으면 30원 이상은 ‘두루’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밭레츠의 신입회원은 0두루로 시작하며, 물건을 사는 사람은 물건을 판 사람에게 두루를 직접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개인별로 온라인 통장을 만들어 통장에 기록하는 거래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두루짜리 물건이 거래되면 산 사람 통장엔 -100두루가, 판 사람 통장엔 +100두루가 기록된다. 그러다보니 한밭레츠의 구성원들끼리는 서로의 거래를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두루의 특징은 쌓아둔다고 이지가 붙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유통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지고 부익부 빈익빈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생활협동조합운동의 산실, 원주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다. 원주는 협동조합운동의 산실로 불리곤 한다. 장일순, 지학순이라는 두 거장으로부터 시작된 ‘자립’, ‘협동’, ‘생명’의 공동체운동의 토대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에서는 1970년대 남한강 대홍수로 인해 지역 농민과 광부들의 생계문제가 위급해지자 신용협동조합과 소비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후 ‘한살림운동’, ‘생활협동조합’을 거쳐 ‘의료생활협동조합’ 등이 빠르게 성장하였다고 한다. 

현재 원주에는 약 30만 인구 중 복수 가입을 포함한 조합원이 약 9만 명이라고 한다. 특히 2003년에 창립된 <원주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는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총 12개의 조합이 함께하고 있으며 교육생협, 노인생협, 보육생협, 의료생협, 대학생협, 문화생협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실험하고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한 체계적, 이론적 기반을 위하여 지역대학인 상지대학과 함께 협동사회경제연구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사회학자들은 오늘날 권력을 기반으로 한 국가와 화폐를 기반으로 한 시장이 시민들의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원주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 김용우 위원장은 협동조합운동은 자율, 자치, 자립을 위한 생활세계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이기적인 사회 시스템을 호혜적인 지역공동체로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제 분야에서는 로컬 푸드 운동을 정치 분야에서는 풀뿌리민주주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디지만 빨리 가는 길

이날 발제 및 토론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더디지만 빨리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어쩌면 오늘날 마을은 질주하는 도시의 시간을 쫓아가지 못했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주변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을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협동하고 성공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특히 마을운동은 전문가보다는 비전문가들의 참여가 쉽다. 시민 없는 시민사회라는 한국시민사회의 지긋지긋한 논의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인 것도 같았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이러한 마을 공동체들이 해체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대안공동체도 국가나 시장을 바꾸기 위해 지방자치에 참여하여 내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권력도 가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체계 내 환경운동(제도중심, 주창중심)과 체계 밖 마을운동(성찰중심, 대안중심)이 만나야할 연대와 접합이 필요할 것 같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꺼내본다.


김창민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 kimc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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