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 03] 쑥대머리 한 자락이 듣고 싶구나 _ 구자상

쑥대머리 한 자락이 듣고 싶구나

편집국에서 연락을 받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곳저곳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많은 사람들 생각도 나고, 꼭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사람들도 많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끝내 왜 너였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평소에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닌 데다 가까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잖니. 네가 신영복 선생의 고전강의 「노자」편에 나오는 ‘노자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이 너에게 꼭 어울리는 것 같다. 주용기가 노자라,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닌 듯하다.

그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만, 너를 처음 만난 건 아마 전국사무국장단 회의였을 것이다. 얼마 만에 한 번씩 모였던 그 모임에서 우리는 언제나 약간의 바람과 약간의 넋두리를 주절대고 그리고 약간의 위안을 얻어오곤 했던 것 같다. 몇몇이 작당이라도 하면 그날은 값싼 술들을 대책 없이 마시고 노래방을 전전하곤 했지. 무거운 과제들을 억지로 무마하거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이토록 환경문제에 냉담한 우리의 현실을 기꺼이 나서서 걱정했었다. 결의들이 넘쳐나고 열망들이 낭자했던 그때 바로 너를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전국에서 모인 우리들 중 나를 비롯한 일부는 부산하게 떠벌리며 소비적이고 흥행중심적인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언제나 넌 한쪽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철없는 선배들의 행락에 너는 가만히, 그리고 약간 홍조 띤 얼굴로 웃으며 동의할 뿐이었지. 10년도 훨씬 전이었지? 노태우가 ‘새만금’을 공약했을 때, 이거 앞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겠냐며 너와 함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새만금은 살아 있는 갯벌에 치명상을 입혔지만 바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도 보이지 않는 큰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경운동이라고 유유(流遊)하는 우리들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열패감을 주었고 도저한 토건세력의 무지의 힘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지.

노무현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이 환경운동의 허약함이라는 사실을, 또 우리 사회의 광기가 아직도 바다만큼 가득하다는 사실을, 너는 새만금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였는가. 우리는 무력함을 위안이라도 하려는 듯 집단으로 그 바다에 모였던 적이 몇 번 있었지. 또 언제인가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너의 검게 탄 얼굴에서, 서해의 바람에라도 흔들릴 것 같은 너의 메마른 몸뚱이에서 나는 보았었다. 무너지는 바다를 건지려는 너의 안간힘을.
아, 왜 이리 쪽팔리느냐, 환경운동이.
생태주의자의 처신이 이렇게 가볍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냐.


용기야,
새만금이 너의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 갯벌의 아우성이 너의 부족함은 아니지 않느냐, 미쳐 돌아가는  세파 속에도 봄바람은 불고, 골프장으로 파헤쳐진 산등성이 저 언저리에도 새로운 이파리들이 변함없이 솟아나지 않느냐. 그리고 진실된 것은 ‘상처받은 영혼’이야말로 하느님이 생태주의자에게, 아니 인간에게 내린 훈장이라는 사실이 아니더냐.

용기야, 지지난 사무총장 선거 때 전국의 여러 곳을 가볼 기회가 있었다. 참 좋은 기회였다. 단언컨대 나는 우리의 운동이 너무나 많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몇몇 지역의 헌신적인 활동도 눈에 띄었지만 대체로 우리의 운동 양태는 너무나 서울적인 것과 타성과 관행, 무력감에 젖어 있더구나.

‘지역의 운동이 서울에 젖어 있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말이지. 우리는 지역을 재발견해야 하고 지역의 이유를 새로운 운동의 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나의 이유’라는 글에서 자유의 의미를 ‘자기의 이유’라고 하였다. 지역은 스스로 지역의 이유를 발견하고 만들어야 해. 그것으로 우리는 고유할 수 있으며 이 거친 우주에서도 견딜 만한 존재가 된다.

사실 나는 수운 선생의 생각과 사상이야말로 세계의 생태주의자들이 공부하고 단련해야 할 튼튼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 그것에 진정한 지역의 환경운동, 아니 생태주의 운동의 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 우리는 자기 손안에 놓인 보석은 보지 못하고 남의 손에 들려 있는 햄버거에 눈이 어두운 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몰라.

서구에서도 일찍이 우리의 전통과 비슷한 생각과 사상을 설파한 사람이 있더군.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야. 이 사람의 ‘발도르프학교’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니, 흔히 인지학파로 불리고 있지. 인지라는 것이 무엇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아니라 인지(人智), 즉 인간의 지혜를 말하고 있어. 아이에게 지혜의 씨앗이 있으니 그것이 잘 발아(發芽)할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야. 이것이 발도르프교육과 사상의 핵심이지. 우리의 교육은 그런 것 잊어버린 지 오래다. 홍익인간, 이거 정말 좋은 사상인데 버린 지 오래이지 않느냐.

지역에 생명과 삶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왜 프로그램이 지역마다 똑같아야 하는지, 왜 10년 동안 이런 무비판의 물량적 이벤트가 환경운동으로 포장되는 것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근본의 변화를 꿈꾸어야 해.

‘생태주의를 건학의 이념으로 하는 대안학교’, ‘살인적인 과외에서 희생되는 아이들을 품어주는 대안학원,’ 생협과 같은 대안식품, ‘생태주의 대안공간’, ‘대안의 만남’, 대안의 에너지, ‘대안의 사회기업’ 등 환경운동의 전망과 내용은 무궁무진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체험캠프 운운하며 타성으로 생태주의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는 근거 없는 무력감으로 스스로를 인질로 환경운동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따라 많은 지역의 후배들이 보고 싶구나. 그리고 새로운 환경운동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언제 기회가 오겠지.

나는 지금 네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너는 너의 지역에서 오랫동안 인간의 면모를 다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언제였던가, 너의 걸진 소리 한 마디가 나의 무딘 세포들을 깨운 것이.

용기야, 너의 ‘쑥대머리’ 한 자락이 다시 한 번 듣고 싶구나.

2007년 7월          

바다 출렁이는 부산에서, 구자상


구자상 iloveyacht@hanmail.net
부산환경운동연합 상근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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