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노 세탁기가 환경을 위협한다고? _ 김명진



오늘날 나노기술은 정보기술, 생명공학에 뒤이어 21세기를 이끌어갈 첨단기술로 칭송받고 있다. 나노기술의 옹호자들은 극미(極微)의 세계를 조작, 분석할 수 있는 나노기술 연구개발을 통해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앞으로 1조 달러에 달할 막대한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그들은 나노기술이 유비쿼터스 컴퓨팅, 질병 치료, 청정에너지 개발 등을 통해 앞으로 우리의 삶의 질과 환경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주장을 단순히 미래학자들의 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먼 미래의 얘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반도체 칩, 가전제품, 화장품, 의류 등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제품들에 나노기술이 이미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장밋빛 낙관 속에는 나노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어두운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외국에서는 나노기술을 둘러싼 논쟁이 이미 수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수많은 나노기술의 응용분야들 중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미 다수의 소비자제품들에 쓰이고 있는 나노입자(나노소재) 분야였다. 2003년경부터 이들 나노입자의 독성에 관한 과학 연구들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서구의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은 나노입자가 인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놓고 우려를 표해 왔다.

나노입자의 독성
나노입자가 환경과 생명체에 위험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먼저 나노기술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노기술이 그토록 높은 잠재력을 지닌 이유는 어떤 물질입자의 크기가 나노(10-9m) 규모까지 작아지면 물질의 화학적, 광학적, 전기적, 열적 성질이 모두 크게 변하기 때문이다. 가령 다이아몬드와 흑연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알려져 온 탄소는 일반적으로 전기를 통하지 않는 부도체이지만, 2나노미터의 지름을 가진 탄소의 미세 구조인 탄소나노튜브가 되면 구리보다 훨씬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가 된다. 탄소나노튜브가 전자공학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금이나 은은 일반적인 입자 크기에서는 화학적으로 불활성이다. 이처럼 다른 원소들과 좀처럼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금이나 은은 고유의 색상과 광택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우리가 이를 귀금속으로 여겨 장신구 등에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금을 나노입자로 만들면 색깔은 금색이 아닌 빨간색으로 변하며, 화학적으로 매우 큰 활성을 띄어 화학반응의 촉매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금이나 은의 나노입자는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생물학적 활성도 갖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살균작용을 이용한 것이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의 은나노 제품들(세탁기, 반창고, 의류, 공기청정기 등)이다. 가령 삼성전자가 출시한 은나노 세탁기는 세탁물 속에 미세한 은입자들을 방류해 의류를 ‘소독’한다.
그러나 나노기술이 매우 큰 잠재력을 갖도록 하는 그 특성은 동시에 나노입자의 독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먼저 나노입자는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대기 중의 각종 미세먼지나 한때 ‘기적의’ 건축용 자재로 칭송되었던 석면처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사람의 피부 등을 통해 곧장 체내로 침입할 수도 있다. 2003년에 발표된 미국 NASA와 듀퐁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탄소나노튜브를 용액 형태로 쥐의 폐 조직에 주입하자 나노튜브가 폐에서 응집하면서 폐 조직을 손상시키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2005년 미국 남부감리교대학의 독성학자 에바 오베르되스터는 또 다른 탄소 나노입자인 버키볼(buckyball)이 포함된 용액이 어류의 뇌 세포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작년에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연구에서는 자외선차단 크림에 쓰이는 산화티타늄 나노입자가 배양된 쥐의 뇌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어떤 물질이 일반적인 입자 크기에서 안전하다고 해서 그것의 나노입자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음을 말해 준다.
또한 나노입자의 특정한 성질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은나노 입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은나노 입자는 미생물과 같은 단세포 생물을 죽이는 살균 효과를 갖지만, 이러한 효과로 인해 우리에게 이로운 미생물까지도 같이 죽어버릴 수 있고, 더 나아가 (아직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세포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작년 11월에 미국 환경보호청이 ‘살균효과를 갖는다고 광고하는’ 은나노 제품들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하수구를 통해 방출되는 은나노 입자들이 유익한 미생물과 물에 사는 생명체들을 죽일 수 있으며 인간에게도 위험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가 주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여러 사건들이 겹치면서 캐나다에 있는 ETC 그룹이나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들은 2003년부터 나노입자를 포함한 신제품 출시와 나노물질을 다루는 실험실 연구에 대한 일시중지(moratorium)과 전 지구적 나노안전성의정서의 채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노기술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서구의 과학계와 나노기술 산업계는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노기술이 자칫 과거 유전자조작식품(GMO)과 같이 소비자대중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시작부터 좌초하는 결과가 초래되지나 않을까 우려해서다. 실제로 2004년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GMO에 대해 비판적인) EU의 시민들은 미국 시민들에 비해 나노기술에 대해 훨씬 덜 낙관적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작년 초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에서 시행된 조사는 일반시민들이 전문가와 관련 기업들에 비해 나노기술의 위험성을 훨씬 더 많이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정부와 과학계는 나노기술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관한 연구에 자발적으로 착수하는 한편, 나노기술에 대한 잠재적 이해당사자인 일반시민들에게 나노기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을 논의의 장으로 초대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2001년 「나노과학과 나노기술의 사회적 함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나노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혜택과 부정적 영향들을 고찰했다. 영국 정부는 2003년 권위있는 왕립학회와 왕립공학아카데미에 “나노기술의 이용에서 나올 수 있는 보건 및 안전, 환경, 윤리, 사회적 함의와 불확실성”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는 2004년 7월 「나노과학과 나노기술 ― 기회와 불확실성」이라는 보고서로 발표되었다. 두 보고서는 모두 일반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권고사항을 담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보고서의 조언에 따라 2005년 초 나노기술 개발 초기에 일반시민들과 대화하고 다양한 참여 기제들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2005년 6월과 7월에 걸쳐 영국에서 개최된 나노 시민배심원제(Nanojury UK)는 특정 기술의 개발 초기에 일반시민들이 정책자문 과정에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더 나아가 영국 랭카스터의 연구팀은 일반시민들이 나노기술에 대해 스스로 발전시킨 지식과 우려들을 나노과학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나노기술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태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일반시민들로부터 정책제언을 얻기 위한 수차례의 포커스그룹 토론을 진행했다. 이러한 시도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2005년 4월에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 지역에서 개최된 나노기술 합의회의를 들 수 있다.

한국의 현재 상황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나노입자의 위험성에 관한 과학연구나 대중적 논의가 거의 활성화가 안 되어 있다. 사실 논의 활성화는 고사하고 나노입자가 사용된 소비자 제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제대로 된 목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반면 미국에서는 우드로우 윌슨 센터에서 작년부터 나노제품들의 목록을 자체 웹사이트 http://www.nanotechproject.org/consumerproducts에 게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기업에서 은나노 기술을 사용했노라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광고를 해야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국내에서 나노기술의 사회적·윤리적·환경적 영향에 관한 논의가 그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기본법과 나노기술촉진법에 근거해 과기부 산하의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03년, 2005년, 2006년에 각각 나노-바이오-정보(NBIT) 융합기술, 나노기술, 나노소재기술에 관한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홈페이지 http://www.takorea. or.kr). 그러나 2003년 보고서는 나노기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로 보고서 내용이 일부 삭제되는 등 수난을 겪었고, 2005년 보고서는 이전 보고서에서 별반 발전된 내용을 담지 못했다(2006년 보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들 보고서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논의한 결과를 담고 있을 뿐, 그 내용을 널리 알려 대중적인 토론을 촉발하거나 일반시민들을 논의의 장에 참석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2005년 보고서의 일부로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설문조사의 결과가 실린 것이 전부이다).
나노기술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생활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따라서 나노기술이 제기하고 있는 위험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논의와 결정이 필요한 문제이다. 나노기술이 제공해 준다고 하는 휘황찬란한 미래의 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에 대한 논쟁과 감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 시점이다.


김명진 walker71@empal.com
성공회대학교 강사,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