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붐이 일고 있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 사회복지관 2층 한귀퉁이. 바지 5백원, 가죽지갑 4백원, 넥타이 3백원, 운동화 2백원, 동요 카세트 테잎 1백원. 
이곳에 자리잡은 일명 ‘녹색가게’의 가격표다. 사회복지관 한귀퉁이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이곳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려 발디딜 틈이 없다. 옷이며 신발, 주방용기 등 비닐봉지에 가져온 온갖 생활용품을 내어놓으며 바꿔갈 물건을 분주히 찾는 아주머니, 아이를 등에 업고 재활용품들이 놓여있는 진열대에서 이것 저것 고르는 주부, 엄마따라 왔는지 장난감이며 책을 고르고 있는 어린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구민체육센터 1층에 위치한 녹색가게도 붐비기는 마찬가지.  문을 닫는 시간인 오후 4시30분이 다 돼 가는데도 물품을 교환하고 재활용품을 고르는 사람들 때문에 자원봉사하는 부녀회 주부들이 정신이 없다.

다시 쓰는 알뜰함 나눠 쓰는 따뜻함
이곳들은 서울 YMCA가 ‘다시 쓰는 알뜰함 나눠쓰는 따뜻함’을 기치로 녹색소비운동을 벌이는   재활용품 매장 ‘녹색가게’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중고 생활용품을 가져와 서로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거나 해당 가격의 구매권을 받아가는 자발적 운영체계의 재활용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매장에는 아이들 장난감에서부터 블라우스, 가죽허리띠, 운동화, 책과 문구류, 겨울 외투 등 다양한 생필품이 깔끔하게 전시돼 있다. 벽면 한쪽에는 직접 가지고 나오지 못하는 용품 교환정보와 생활정보를 지역주민들끼리 나눌 수 있게 게시판을 만들어 놓았다.
IMF 위기로 사회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는 녹색가게운동 또는 녹색소비운동은, 기존의 소비행태가 야기하는 자원낭비와 그에 따른 환경파괴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보자는데서 출발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소비규모도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하루에도 수천대의 차량이 증가하고 한해에 천만대 이상의 멀쩡한 가전제품이 버려지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소모적으로 쓰기만 할 뿐 재사용하는 통로가 없습니다. 실제로 재사용이 가능한 것들이 유효한 통로를 찾지 못해 그냥 방치되거나 버려져 쓰레기가 되죠.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의 정신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패턴을 바꾸는 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색가게운동을 총괄하고 있는 YMCA 시민사회개발부 변선희 간사의 말이다. 
소비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매스컴의 광고는 우리를 끊임없는 소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한다. 브레이크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처럼 환경파괴를 부르는 자원낭비적 소비가 어느새 우리의 의식과 생활 깊숙히 자리잡아왔다.
“기존의 소비양식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 내기위해 환경피해를 최소화하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적정소비수준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녹색가게는 지역주민들이 자발적 운영체계로 재활용·재사용 실천의 중심공간임과 동시에 지역공동체사회 개발을 함께 만들어 내는 공간이죠.”
그의 말처럼 녹색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물물교환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교환물품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은 1,2점만 구입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쓸만한데 각 가정에서는 필요없는 중고 생활용품들을 들고 나와 녹색가게에서 구매권과 교환할 수 있다. 재활용품의 사용가치에 따라 최저 1백원에서 최고 5천원까지 평가된 구매권으로 다른 재활용 생활용품을 살 수 있다. 단, 많이 가지고 온다고 해서 그만큼 교환해 갈 수 있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교환하고 나머지는 녹색가게의 화폐와 다름없는 구매권으로 가져갈 수 있다.
또 한켠에는 환경마크인증제품과 재생제품 등 환경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따로 있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품목은 ‘물사랑 천연물 비누’ ‘늘 고운 세탁 가루’ 등 세제와 비누제품으로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 재생공책이나 재생 화장지 등 종류를 늘릴 계획이다.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녹색가게의 경우, 비누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하며 자원봉사자인 한 주부가 텅빈 비누 진열대를 가리켰다.
은평 녹색가게에서 아이의 겨울 잠바를 1천원에 주고 샀다는 주부 이영미 씨는 “왜 진작 이런데가 안생겼나 모르겠어요. 버리기는 아깝고 나두자니 쓸모없이 짐만 되는 것들이 여기서 제 주인을 찾잖아요. 집안의 짐정리해서 좋고 필요한 걸로 바꿔갈 수 있으니 서로서로 좋아요”하며 이곳을 자주 들른다고 했다. 
YMCA는 현재 서초, 은평, 장안 3곳에 녹색가게를, 과천에는 알뜰매장을 열어놓고 있는데 올 한해동안 전국에 1백여곳에 녹색가게를 설치, 자원의 소비절약과 환경친화적 소비생활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재활용 물품들을 취급하는데는 이곳말고도 기존의 각 구청마다 설치돼 있는 재활용 센터가 있다. 
구청이 직영하거나 지자체의 위탁을 받아 민간이 운영하는 형식인데, 앞서의 녹색가게가 생활용품이 주였던 것에 비해 가전제품이나 가구류가 주된 품목이다. 버리거나 고쳐쓰고 싶은 가전이나 가구가 있을때 구청이나 이곳 재활용 센터에 전화하면 무료로 수거해 가거나 소정의 수리비를 받고 고쳐준다. 96년에 개장한 성동구청 재활용 센터의 경우 구청이 부지를 임대해 민간이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건평 1백50여평 정도의 꽤 큰 규모이다. 침대, 옷장, 책상을 비롯한 가구에서 텔레비젼, 비디오,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대부분이다. 냉장고는 보통 5〜15만원, 세탁기는 5〜10만원, 4자짜리 옷장은 7〜10만원 정도로 구입할 수 있다. 
성동구청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성기영 사장은 “이사를 가면 멀쩡한 가구들과 가전제품들을 새것으로 바꿉니다. 시절이 그래서인지 요즘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옵니다.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아껴쓰고 다시 쓰고 해야죠. IMF가 힘들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각성 좀 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청 재활용센터는 대부분 매장이 좁은 탓에 품목을 다양화하고 전문적으로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의류나 도서, 유아용품 등을 재활용 센터에 주면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다. 

국내 폐지, 폐페트병 등 재활용품 수요 급등
한편, IMF의 구제금융 이후 환율상승으로 펄프나 고철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각 자치구에 재활용품 집하장과 재활용업체에 쌓여 골머리를 앓았던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환경부는 t당 13만원이었던 수입펄프 가격이 97년 11월 이후 환율상승으로 2배 이상 오르면서 국산폐지를 찾는 제지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국산폐지가 재활용 비용이 많이 들어 거의 쓰지 않거나 선별해서 구입했지만 최근에는 수집상이 가져오는 폐지는 품질에 관계없이 전량을 사들이고 있다. 그마저도 공급물량이 부족해 2개월전에는 ㎏당 30〜35원 하던 폐지 가격이 40〜50원으로 뛰었고 요즘에는 선수금을 주고도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자원재생공사의 폐지 재고량이 지난해 같은 시기 1천3백63t에 달하던 것이 올해는 44.9% 줄어든 7백18t으로 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정은 폐페트병도 마찬가지. 재생비용이 너무 비싸고 수출도 부진해 적체가 심했던 폐폐트병은 지방자치단체가 무료로 재활용업체에 공급했으나 현재는 적체해소는 물론 물량이 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재활용률 10% 증가하면 3억달러 번다
환경부는 종이, 고철, 캔, 플라스틱 등 4개 품목에 대한 재활용률을 10%씩 증가시킬 경우 약 3억 달러의 원자재수입 대체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재활용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원재생공사가 비축하고 있는 재활용품을 물량부족이 예상되는 재활용업체에 우선적으로 공급하도록 하고 지자체에 대해서도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분리수거 등의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할 계획이다. 또한 재활용품 수요확대를 위해 재활용품 의무구매 공공기관과 품목을 늘리고 지역별 재활용품 판매코너 설치 등도 적극 권장할 방침이다.
이에 서울시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의 분리수거를 올해부터는 이전의 문전수거방식에서 직접 받아오는 대면수거방식으로 바꿔 전 구에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서울시 재활용과 심상룡 계장은 “재활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올해 시는 재활용사업체에 20억원의 자금을 연리 5%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 영세하게 운영되는 고물상이나 민간수집상들에게 5억원을 무상지원해 재생가능한 자원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최소화 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심 계장은 또 원자재 수입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재활용의 생활화가 시급해, 현재 25개 구청마다 있는 재활용 센터 외에도 5곳을 더 늘리기로 하고 기존 재활용센터에는 재생노트, 재생비누 등을 판매하는 재생제품 판매코너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재활용을 모범적으로 하는 자치구 중 하나인 성동구는 하루 일반 쓰레기가 92톤 가량이다. 작년의 경우 2백44톤에 달했는데 점점 줄어들고 있고 대신 재활용품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성동구청 청소과 박기원 재활용 계장은 “성동구는 구내에서 최대한 재활용품을 수집하기 위해 작년 5월부터 20개동을 주 5일 대면수거로 직접 분리수거를 하고 있으며 이번에 1억5천을 투자해 재활용품 집하장에 재활용처리 기기를 설치, 수거와 처리에 이르는 과정을 체계화 했다”며 자치구별로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IMF 경제난 여파속에서 재활용품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청 국립기술품질원 안에 자원재활용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재활용 제품의 규격제정 및 인증업무를 담당할 ‘자원재활용기술개발센터’가 만들어졌다. 국립기술품질원은 이 센터 설립을 계기로 여러 재활용품의 재활용률을 높여 자원절약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IMF 시대 경제불황의 여파로 삶이 어려워지고 고달퍼졌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의 화려한 구호대신 자원 리사이클링이 되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소비문화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없진 않지만, IMF라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단기적 처방으로만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IMF 라는 어려운 시기를 새로운 소비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기회로 삼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대안적 소비생활양식의 기틀을 만들때가 아닌가 싶다.


자원빈국인 나라에서 멀쩡한 냉장고를 버리고 대형냉장고를 사고,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하루에도 
수천대의 자동차가 증가하는 나라의 경제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IMF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이기도 하다. 외환위기와 환율폭등 속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바로 재활용 센터이다. IMF로 인해 어려워진 가정과 기업, 나라의 살림살이를 살리고, 
또한 환경을 살리는 지혜로운 실천이 늘고 있다.

황숙희/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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