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 말·글/ 국책사업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하여/ 최성각

나뭇잎만한 이야기

국책사업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하여



지구의 날 오후였다. 석우는 영월의 명노영 씨와 통화를 했다. 오랜만의 안부 전화였다. 명
선생은 스스로 ‘조그마한 구멍가게하는 사람’이라고 밝히지만, 지난 4년여간 그가 사람들
을 만나면 건네는 명함에는 ‘영월댐백지화3개군투쟁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찍혀 있었다.
나이는 40대 중후반, 석우와 동강과 서울에서 수차례 만났지만 그와 탯줄 묻은 시기를 따지
는 짓 따위는 안 했다.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묻는 안부는 정동수 위원장, 정규화 부위원장, 사무국의 김광운 씨 등이다.
“모두들 잘 계시느냐?” “어디 아프신 데는 없느냐?”
지난해 동강댐 건설 막는 일에 미쳐(? 다른 점잖은 표현이 안 떠오른다), 깊고 드넓은 동강
을 마치 안마당처럼 돌아다니시다가, 다리를 다쳐 석 달이나 깁스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석우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극존칭을 억제하지 못한
다.
“정 위원장, 농사는 어떠신지? 아 참, 정규화 부위원장도 농사짓는 사람이죠?”
그런 질문도 안 할 수 없다.
“그 양반들, 농사 접고 산 지 오래됐지요.”
명 선생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답한다. 지난해 6월인가, 글쟁이인 석우가 한 문학단체의 글
쟁이와 독자들과 함께 동강을 찾았을 때, 동강댐 건설에 무슨 문제가 되는지 그곳 ‘백투
위’분들의 육성을 직접 들으려고 연락을 드렸더니, 명 선생과 정 선생은 나타났는데, 나이
든 정동수 님은 안 보였다. “어디 가셨느냐?” 했더니, “지금 밭에서 일하는데, 곧 오실
거다”며 강둑 너머 밭을 바라보며 명 선생이 답한 기억이 난다. 그때 초여름 땡볕을 피해
섭새교 아래 자갈밭 그늘에서 그 대답을 함께 들은 글쟁이들과 독자들은 가볍게 웃음을 터
뜨렸다. 어떤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필자는 특정 장소와 관련하여 그보다 감동적인
답변을 들어본 적이 없다. 모처럼 그가 있어야 할 밭에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서울
에서 손님들이 동강 보러 오셨다니 정 위원장이 흙 묻은 손으로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그랬다. 그들은 누대에 걸쳐 그곳에서 농사를 짓거나 명 선생 말대로 영월읍내에서 조그마
한 구멍가게를 하던 평범한 무지랭이들이었다. 그러나 동강댐 건설이라는 재앙을 맞이하자
그들의 생활은 돌변하고 말았다. 밤낮없이 그들은 팽팽한 얼굴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댐
을 악착같이 짓겠다는 나랏님들과, 지으면 어떻게 보상을 얻을까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짓거
나 말거나 여름 동강특수 때 돈이나 벌겠다는 장사치들이 그들이다. 혹은 짓거나 말거나 나
랑 상관없다는 수많은 무임승차족들, 혹은 동강댐 건설이라는 전천후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전국 각처에서 몰려온 전문가들, 수천의 관광객들 또한 그들이 4년여 동안 매일같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은 생업을 잃어버릴 지경이거나 건강을 상할 지경이
되었다. 어떤 때는 한달에도 몇 차례씩 서울을 들락거렸으며 동강댐건설 백지화에 조금이라
도 보탬이 된다면 국회의사당 앞이든, 나무심은 뒤 빚지고 불안해져서 악에 받쳐 동강 관광
객들을 톱으로 썰어 동강에 뿌리겠다는 상처받은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그러면 안 된다’
고 호소하곤 했다. 그러기를 4년여. 끝까지 보상없는 그 일에 ‘돈 쓰고 몸 망가지면서’ 몰
두한 사람들은 다른 운동이 늘 그렇듯이 ‘단지 몇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없
는 정열을 허용한 그들의 아내들이다. 그 몇 사람들의 혜택을 우리 모두 지금 받고, 앞으로
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백투위 몇 분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동강댐 건설을 막았겠
어요!”
석우가 정중한 어조로 인사했다.
“에이, 우리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들은 고개숙인 벼이삭처럼, 들의 잡초처럼 겸손하게 부끄러워한다.
석우는 명 선생 같은 ‘백투위’ 분들의 얼굴을 얼마전 새만금 해창 장승터에서 또 보았다.
바로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얼굴이 바로 그랬다.
“명 선생님, 내 생각은 말이오. 돈 빌려 나무 심고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에 대한 정부 차원
에서의 배려와 동정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말이오. 설득력 없는 국책사업을 되돌이키기
위해 생업을 제치고 몸 망가지며 고생하신 백투위 같은 분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오. 동강댐 백지화 발표나면 제기랄, 그런 보상
운동 같이 벌일 친구들을 찾아볼 참입니다.”
석우가 갑자기 흥분한 어조로 열을 냈다.
“에이, 보상은 무슨놈의 보상을…. 누가 뭐 시켜서 했나요. 운동하면서 우리들도 얼마나 달
라졌는데요. 꼭 잃기만 한 건 아니랍니다, 윤 선생. …그나저나 선거가 끝났는데도 백지화
발표를 왜 이래 꾸물거리는지 모르겠네요. 여 수자원공사패들은 댐 지으면 살려고 샀던 집
들을 팔려고 다 내놓았는데 말예요.”
백지화가 기정사실이라고 말들 하지만 수년간 오로지 그 ‘한 마디 말’을 듣기 위해 싸운
명 선생은 여전히 초조함을 감추지 않았다.
“걱정마십쇼. 명 선생님, 곧 백지화 발표 날 겁니다. 만약에 발표 안 나면 또 싸워야지요.”
“걸 말이라 하쇼! 허허헛!”
명 선생과 통화를 하고 나면 언제나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


최성각 fullssi@chollian.net
소설가. 강릉에서 태어났고, 환경재앙의 현장에 자주 나타나 사람들이
‘쌈쟁이 작가’라 부른다.
1986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잠자는 불』 『택시 드라이버』 『부용산』 등을 펴냈다.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을 수상했고 새나 돌에게 ‘풀꽃상’을 드리는 환경단체 <풀꽃세상
을 위한 모임>의 실무자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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