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 풀·나무·동물/ 거제도에서 보내온 편지/ 윤미숙

거제도에서 보내온 편지



‘달수’는 일년을 못 살고 갔습니다.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이 20년이라는데 달수는 겨우
아홉달 살다 갔습니다. 거제환경연합 사무실 뒷켠의 두 평짜리 달수집은 아직도 달수의 체
취로 가득하고, 사무실 여기저기 제가 갖고 놀던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지난해 9월 30일, 갯벌을 헤매다 탈진한 상태로 한 아주머니에게 발견돼 사무국으로 왔을
때, 겨우 젖니만 두어개 났던 빠알간 입안이 생각납니다. 생선회를 떠서 줘야만 냠냠 먹던
녀석이 고맙게도 무럭무럭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하루하루 커가던 모습에 대견하고 가슴 뿌듯했지만 한켠으로는 수달 종의 절멸에 대한 현실
을 그대로 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막막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
무국은 달수의 배설물 냄새로 가득하고,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기 일쑤였으나 긴밤내 엄마도
친구도 없이 갑갑한 사무실에서 혼자 견뎠을 것을 생각하면 참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최근 인제군에서 달수를 보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수달보호론자라고 자청하는 이의 인도
요청도 있었고 하물며 동물원에서도 보내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달수가 나고 자란 곳이
이곳 거제도이고, 어쩌다 가족을 잃게 되었지만 다시 가족에게로 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적응훈련을 하러 바닷가에 나가면 갯내음에 코를 벌름거리고 킁킁대면
서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 우리는 희망을 보았고 야생성을 회복하는대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경남도와, 거제시, 문화재청에도 미아가 되거나 다친 수달의 보호시설 건립을 끊임없이 요구
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서 달수의 현실을 고발하고 호소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관련부처에서는 ‘필요성을 인정을 하지만...’ 늘 결론은 흐지부지한 대답 뿐이었습
니다. 마침내 거제시로부터 ‘수달의 보호시설을 건립하기 위한 습지를 제공할 의향이 있
다’는 대답을 들은 날은 달수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습니다.
달수의 사체에 외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전날 저녁(4월18일) 평소대로 밥 잘먹고(싱싱한 전
어 중간크기 한 마리), 뽀뽀도 하고, 장난을 한참치다가 저녁 8시쯤 제집에 들어갔고, 아침
에 상근자가 출근해서 ‘야, 달수 밥먹자!’고 불렀을 때, 대답이 없었고, 느낌이 이상했고,
집에 들어가 만졌을 때,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 지쳤던 것일까요. 지금까지 습지도 아닌 곳에서 견디고 기다리며 살아준 것만도 고맙
다고 해야겠지요. 지금 사무국은 초상집입니다. 한 존재의 사라짐이 이렇게 허전함을 안겨줄
수 있다니…. 또 어디서 달수 같은 어린 수달이 폐어구에 걸려서, 혹은 통발에 갇혀서, 어미
를 잃고 운명을 달리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들의 계속되는 주검의 행렬을 무기력하게 지
켜보면서 안타까워해야만 하는 것인지,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끌어냈어야 한다는 자괴감에
참 견디기 힘든 시간입니다. 하나의 무거운 숙제로 남게 되겠지요.
‘달수’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작은 비를 세워 달수의 삶을 짧게나마 기
록해서 생태적 경고를 알리려 합니다.


윤미숙 kjkfem@chollian.net
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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