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 나무의 흡혈, 고로쇠 수액 채취

나무의 흡혈,
고로쇠 수액 체취


봄이 되면 겨우내 움추렸던 모든 것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벗고 나무
들은 뿌리에서 수액을 끌어올려 잎을 피울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 봄은 성장을 준비하는 나무들
에게 또 다른 시련의 계절이 시작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드릴로 구멍뚫어 비닐과 호수에 연결
지금 지리산과 백운산, 거제와 남양주 등 전국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다. 경칩을 전
후해 한달 가량 고로쇠나무가 있는 곳 어디라도 가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고로쇠나무를 발견
할 수 있다. 브이자로 나무 표피에 상처를 내서 떨어지는 고로쇠 수액을 받거나 천공법이라고 해
서 드릴로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하거나 비닐봉지를 매달아 채취한다.
“지리산에선 아직 안 나와. 철이 아니지. 다음 주나 되야 나올건데, 여기 전화번호 줄텐게 전
화혀. 그럼 금방 서울로 배달해준께. 오늘 우리 아들이 산에 고로쇠 받을 준비하러 갔어. 파이
프 같은 거 미리 준비해야 하거든.”
지리산을 옆으로 끼고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길, 줄지어선 십여개의 가게 앞에 수십개의 약수
통이 쌓여 있어 들어갔더니 고로쇠를 찾아 온 관광객인줄 알고 주인 아주머니가 서울까지 배달해
준다며 꼭 전화하라고 한다. 고로쇠 수액 채취를 가장 많이 하는 곳 중 하나인 남원에서는 특산
품 전시판매를 하는 곳에서 벌써 고로쇠를 판매하고 있었다. 한 통에 5만5천원을 받고 있는데 벌
써 다 팔리고 한 통이 남아 있다.
“여기는 그거 한 철 하는기 1년내내 농사짓는 것보담 나아. 한 20일 해가지고 1천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는데도 있으니까. 도시사람덜이 몸에 좋다니까 너도나도 와서 사가고 하는디 가짜도
많어. 어디 고로쇠물이 그리 많을 수가 있으까. 고로쇠 나무껍질로 물 우려내 고로쇠라 하는 것
도 많다니까. 도시사람들은 참 돈도 많어.” 남원 운봉읍 기장마을의 한 아주머니는 이맘때만 되
면 고로쇠 먹겠다고 오는 도시사람들이 그리 많다고 한다. 지리산의 남원은 물론 백운산이 있는
광양쪽으로 가는 길에는 신비의 약수 고로쇠를 판매한다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지리산 지역은 산림청이 채취 허가권을 갖고 있지만 관리감독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하고 있어
이 지역 관리사무소인 지리산북부사무소의 담당자를 찾아갔다.
“사실 지역주민의 생계와 관련돼 있어서 함부로 통제구역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남원지역은
주로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내고 호스로 연결, 여러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한꺼번에 모으게 하
는 파이프를 다시 연결해서 아래로 모으게 합니다. 주로 해발이 높은 곳에서 고로쇠가 서식하기
때문에 이런 파이프가 어지럽게 산자락에 널려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면 나무 자체에 대한
피해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이나 기타 주변 생태에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일정정도 이상의 나무가 아니면 채취를 못하게 하고 2∼3개 이상은 구멍을 뚫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채취가 끝나면 구멍을 막고 파이프도 수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는 산림청이 허가권을 줄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막기보다는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지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이긴 하지만 여기
서 수십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산 자체가 농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북부관리사무소 생태담당인 이지형씨는 고로쇠 수액이 건강에 좋다고 해
서 도시사람들이 많이 찾자 고로쇠 채취가 늘고 있다고 한다. 96년까지는 무상양여와 도끼로 상
처를 내는 사구법으로 무분별한 채취가 성행해 97년부터는 고로쇠나무 보존 차원에서 양여분의
10%를 유상으로 하고 드릴로 구멍을 뚫는 천공법을 정착시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리산
고로쇠가 유명해지자 장수나 거제 등에서 유입돼 들어오는 고로쇠도 있어 한 철 수입이 뱀사골에
서만 26억원 정도 된다고 추정했다. 드러난 자료로만 합산한 것이니 아마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
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지자체에서 관리권을 달라고 난리란다.

나무도 헌혈한다고 보면 되잖아요?
국립공원이기는 하지만 주민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 고로쇠 체취를 막을 수는 없고 해서 산림청
과 환경부 차원에서는 고로쇠 채취 ‘요령’에 대한 교육자료를 만들어 남원이나 장수, 함양 등
채취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곳 주민들을 상대로 교육을 한다. 이 ‘요령’에 따르면 지름이
30cm 미만에서는 1개, 30cm 이상은 2개의 구멍을 드릴로 뚫어야 하고 채취가 끝나면 호스나 실리
콘마개를 모두 제거하고 구멍난 곳에 포르말린 등과 같은 살균제를 입혀 균 침입을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와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각 지자체 담당자들이 마침 지역을 다니며 교
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수액채취가 고로쇠나무에 미치는 영향이나 살균제가 나무에 문제가 없
느냐는 질문에는 누구 하나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산림청과 임업연구원이 2000년부터 2002
년까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지금까지 연구결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제대로 된 연구
가 진행돼 있는 게 없었다. 함양군 관계자는 “사람도 자기 피를 헌혈해도 문제 없잖아요. 봄에
수액 채취 조금 한다고 해서 나무가 죽거나 그러겠습니까. 아니예요. 그만한 자기 복원력은 있
지 않겠습니까” 반문했다. 하지만 한국야생동물연합의 한상훈 박사는 “인간도 상처를 내면 안
좋은 게 사실이잖아요. 봄에 나오는 이 수액은 나무에게는 모유와 같은 것인데 인간이 뽑아 먹으
면 좋을 리가 있습니까. 게다가 수액 채취한다고 산을 헤집고 다니면 야생동물이나 생태계에 분
명히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굳이 주민의 생계가 문제가 된다면 캐나다처럼 국립공원 내 최소한
의 범위에 조림을 해서 그 안에서만 채취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산림전문가들은 해발 5백m 이상 고지대서 자생하는 단풍나무과 활엽수인 고로쇠나무가 가지나 잎
의 성장을 위해 뿌리로부터 아직 채 녹지도 않은 땅 속에서 부랴부랴 필요한 물과 양분을 빨아들
여 열심히 잎과 줄기로 올려보내는데, 이 때 사람들이 올라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뽑아내기
때문에 고로쇠 물을 빼앗긴 나무는 한창 자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차츰 기력이 떨어져 한 여름
에도 짙푸르기보다 오히려 노르스름한 잎사귀를 내놓다가 이것이 계속 지속되면 결국 말라죽는다
는 것이다. 사실 ‘신비의 명약’이라는 소문처럼 뼈에 좋고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임업연구원
의 보고서에 따르면 포도당이나 무기물이 조금 함유돼 있을 뿐이다.

생명을 빼앗는 일이 축제로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달리 백운산이 있는 광양의 경우는 고로쇠 채취에 대한 허가와 관리를 광양
시가 직접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예 시 차원에서 신비의 고로쇠는 백운산 고로쇠라며 전단을
만들며 홍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림청이 지침을 내리기 전에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지침
을 만들고-물론 산림청 수준보다 훨씬 관대한 지침이다-지역주민의 고로쇠 채취를 부추기고 있
다. 지자체에 들어오는 양여수수료와 관광사업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양시만이 아니라 남
원, 거제 등에서도 고로쇠 축제를 열어 하나의 관광상품화시키고 있다. 거제환경연합의 윤미숙
사무국장에 따르면 거제에서도 고로쇠 채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고로쇠 수액
채취 현장조사에서에서는 12개의 구멍이 뚫려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도 있었다고 전해 왔
다.
건강에 좋다면 잠자는 개구리까지 잡아들이는 인간들이 이제는 나무의 피를 빨고 있다. 봄에 나
오는 고로쇠 수액은 고로쇠나무에게는 나누어줘도 되는 헌혈이 아니라 생명수를 빼앗기는 일이
다. 한 생명을 지키겠다고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

황숙희 기자 hwangsh@kfem.or.kr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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