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 미사일 방어체제와 핵군비경쟁/ 정욱식

미사일 방어체제와 핵군비경쟁

조지 W.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5월 1일 국방대학교 특별연설에서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미사
일 및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전지구적 차원의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공식 천명하면서 전
세계가 또다시 미사일 방어체제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MD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달래고 동맹국들을 MD에 참여시키기 위해 활발한 MD 외교를 전개하는 한
편, MD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은 미국의 일방적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MD가 야기하는 부정
적인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어 MD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밝힌 이른바 ‘새로운 안보틀’은 한편으로는 ‘깡패국가들의 수중에 있는 소수
의 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중동, 동아시아 및 미국 본토를 잇
는 전지구적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안보와 동맹국 보호에 지장
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핵무기를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핵무기의 파괴력에 의존
하는 억지전략에서 공격용 핵무기는 줄이고 방어용 무기인 미사일 방어체제를 만듦으로써 ‘방
어’ 전략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미사일 방어망
미국 정부는 미사일 방어망이 핵무기와 같은 공격용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
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미사일 방어망이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
방국들까지 보호할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미국이 꾸준히 핵무기를 감축하고 있다는 것에 의
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말하고 있는 전지구적 미사일 방어망은 실현 가능성
을 떠나 자국을 중심으로 한 친미국가들과 반대진영의 국가들을 분리시킴으로써 냉전시대와 유사
한 진영 간의 대립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미국 군사전략의 중심축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하
고 있는 시점에 추진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는 과거 동아시아 사회주의 블록인 러시아-중국-
북한 관계를 복원시키고 있어 동아시아에서 신냉전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핵무기 감축 정책 역시 이미 과도하게 보유한 핵무기의 ‘양’은 줄이되 ‘질’은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결코 핵독점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핵무기의
완전 폐기라는 인류 공동체의 요구를 저버리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MD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추진 강
행으로 군비통제가 위기에 처할 것을 우려하는 동맹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들고 나온 ‘일방적 핵
무기 감축’ 선언 역시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밝힌 핵무기 감축 계획은 현재 7
천기 이상의 핵탄두를 미국 및 동맹국들의 안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즉 2천기 정도로 줄이
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감축은 이미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및 국제조약인
핵확산금지조약(NPT), 그리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등에 명시된 것으로 부시 행정부가 밝
힌 핵무기 감축계획은 별로 특별한 게 없다. 오히려 부시의 핵무기 감축 발언의 이면에는 핵무기
의 ‘양’은 줄이되 ‘질’은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부시 행정부는 CTBT 인준을 꺼리
면서 파괴력과 정교함을 높일 수 있는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
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의 ‘수’를 줄임으로써 NMD에 대한 비판
적인 여론을 무마하고 핵무기의 ‘질’은 높임으로써 미국의 핵우위는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
이다. 또한 막대한 핵무기 관리비용을 줄여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및 우주의 군사적 지배를 강화
하려는 데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 부시 핵감축 발언의 ‘진실’인 것이다.
첨예한 핵군비경쟁 불가피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이와 같은 일방적 전략환경 재편 및 패권주의 추구가 또 다시 전세계적인
핵군비경쟁을 낳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MD 구축을 강행할 경우 핵
폐기를 중단하고 다탄두 핵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구 소련의 전략무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하는 한
편,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유럽이 포함될 경우 유럽의 주요 도시를 겨냥한 핵 미사일을 재배치
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동 역시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 미사일
방어망 배치를 서두르면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탄도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
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시아에 있다. 미국의 MD 구상에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는 중국은 벌써부터
미국과의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특히 MD 구축에 따른 전력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핵무기
및 이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조차
미국이 MD를 배치할 경우 중국은 향후 10배로 핵전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
국의 핵무장 강화는 아시아 지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이미 한차례 중국과 전
쟁을 치른바 있는 인도는 중국에 대한 견제효과가 크다며 미국의 MD 구상을 공식적으로 지지하
고 나섰고, 인도와 첨예한 핵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관계강화를 꾀하고 있
는 실정이다.
MD 및 이에 따른 핵무기 경쟁의 첨예화가 낳을 수 있는 가장 우려할 만한 일은 비핵보유국가들
인 남북한과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핵전력 강화는 일
본 내의 핵무장론을 부추길 것이고, 이것은 또 다시 남북한에게 영향을 미쳐 걷잡을 수 없는
‘핵무기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아직 핵무기를 갖고 있
지 않은 남북한과 일본 가운데 한나라가 핵을 보유하거나 보유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는 핵도미
노 현상을 일으켜 기존의 군비경쟁 성격이 재래식 무기에서 전략무기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
다. MD가 동북아 비핵지대화 및 공동안보로의 이행에 근본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듯 부시 행정부가 막가파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MD는 각국 정부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전세
계 평화운동가들이 직면한 최대 도전이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MD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속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종이’이자, 국경을 넘어 전세계 평화군축운동이 연대
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운동 차원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도전과 과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와 다른 21세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반
도 냉전구조에 강력한 구심 작용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냉전 부활 조짐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동아시아 냉전 부활의 구실을 제거할 수 있는 평화의 원심력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에 따라 21세기 한반도 평화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욱식 civil@peacekorea.org
평화네트워크 대표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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