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1] 동강, 그 아름다운 사람이 흐르는 강

동강, 그 아름다운 사람이 흐르는 강


바람 부는 강에 물만 흐릅디까. 아닙디다. 강에는 돌과 물고기 그리고 사람이 함께 흐릅디다. 물
빛이 하늘빛을 담보하듯, 사람은 강물을 떠나지 못하고 강은 사람을 버리지 못합디다.
그래서 강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강을 닮아버린 그 곳. 그 강을 걷는 것은 사람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강을 걸었습니다. 강이 살아 온 것에 대면 흐르는 강물 한 움큼도 되지 않
을 세월, 십년 동안 같은 몸짓으로 강을 걸으면 한때 그 아름다움에 흠씬 젖어 다리가 후들거리
기도 했습니다.
들메 끈 고쳐 묶으려 앉은 김에 다리 쉼하며 만났던 동강의 사람들, 그들은 벌거숭이였습니다.
자연이 아름다울 수 있는 그 수많은 까닭을 으뜸과 버금으로 가리는 일이 볼 썽사납긴 하지만 그
래도 으뜸은 벌거숭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
은 나에게 아무 것도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을 풋풋하게 내놓으며 다가 왔습니다. 도시에서, 스
쳐 지나가는 화려한 여인네들이 질퍽하게 뿌려 댄 향수 냄새에 질식하듯 난 그들의 벌거숭이 아
름다움에 질식하고 말았습니다.
모나지 않은 사람들, 그것은 강이 모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그들과 가을이면 바
위를 두드려 어름치를 잡고 겨울이면 얼음을 두들겨 팔뚝만한 어름치를 잡곤 했습니다. 한바탕
고기잡이가 끝나면 아랫목에 앉아 쓴 소주잔 기울이며 그들이 살아 온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어느 날, 도시에 사는 모난 사람들이 그 곳에 댐을 막겠다고 나서면서 모
나지 않은 벌거숭이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들이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두터운 옷에는 가
시마저 숭숭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난 압니다. 가시가 박힌 두터운 옷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
고 그 옷은 그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 입은 것이지 누구를 해치려 입은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그
들이 옷을 입는 사이 덩달아 강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강은 말썽 많은 둘째 아들처
럼 골칫거리가 됐고 어느새 강과 사람들 모두 그들이 지니고 있던 벌거숭이의 아름다움을 잃어
갔습니다. 강이 긴장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도시의 사람들이 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잔인하게도 강을 그리고 그 곳에 살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탐욕의 끝은 결국 강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강에 살
던 사람들은 더욱 두터운 옷을 장만했습니다. 그걸 두고 도시의 사람들은 또 한마디씩 거들었습
니다. 자기 욕심은 꼭꼭 감추어 두고 강에 사는 사람들의 욕심에 대해서만 나무랐던 것입니다.


욕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이제라
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강에 살던 벌거숭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에게 누
가 욕심을 부추킨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나
무라는 일 이제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강이 저 홀로 아름답지 못하듯 사람 또한 저 홀로 아름다
울 수 없을 것입니다. 강물과 사람이 같이 흐르는 강. 그 강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강입니다.
세상천지 늦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늦었다고 후회하고 있는 시간에 차라리 사랑을 시작하
는 편이 훨씬 현명한 법입니다. 그래서 살갑게 사람을 대하던 그들의 본래면목을 되찾아 주었으
면 싶습니다. 그들이 해 주던 전설과 같은 강에서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이고
또 그들이 십년 전, 강가에 앉아 나에게 내놓던 너그러운 웃음처럼 환한 웃음을 다시 보았으면
싶습니다. 그 뿐입니다.

이지누 nu@deesae.com
사진을 박고 글을 쓴 이지누는 계간지 『디새집』과 웹진 『너새집』의 편집인이다. 본지 편집자
문위원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30)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