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 아이팔기 풍속

아이팔기 풍속



아들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던 김아무개 할머니는 용한 무당을 찾아가 아들의 사
업운수를 물어보았다. 무당은 대뜸 “아들을 팔았지요?” 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 이리 용한가
하고 내심 놀라며 “예, 팔았니더.” 했다.
“아들을 어따다 팔었니껴?”
“우리 동네 마답(馬畓)에 팔었지요.”
“왜 그랬니껴? 말띠를 마답에 팔아놨으이 잘 풀리니껴! 말이 마답에 꼭 붙들어 매이가지고 사업
이 잘 될래야 될 수가 없니더.”
“뭔 좋은 방책이 없니껴?”
“그때 판 거를 다시 물리고 새로 팔어야 되니더. 말이 지 맘대로 뛰어댕기며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천방(川防)이 좋으이더. 그래야 사업도 번성하고 살림도 늘지요.”
아들을 팔았다고 하는 말을 얼추 들으면 인신매매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신매
매가 아니라 ‘아이팔기’ 풍속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손이 귀한 집에서 아이가 잔병치레를 하
게 되면 어른들은 ‘아이팔기’를 한다. 아이의 건강과 수명을 부모가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 때
문에 산이나 바위, 나무, 강 등의 자연물에다가 아이를 파는 것이다. 자연이 바로 아이의 건강
과 수명을 보장하는 진정한 부모로 믿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하늘을 아버지로, 땅
을 어머니로 섬기는 천부지모(天父地母) 사상을 품고 살았다. 이때 아버지는 하늘처럼 높고 어머
니는 땅처럼 낮다는 것이 아니라, 천지(天地) 곧 자연이 바로 인간의 부모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
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자식의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자녀의
수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인간의 본디 부모인 자연에게 부모의 권한을 넘겨주는 제의
적 의식이 ‘아이 팔기’이다. 판다고 해서 아이를 건네주고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
성을 들여 빌면서 아이를 맡기고 부모로서 권리를 넘겨주는 것이다. 사실은 자연에게 아이의 양
육을 의뢰하는 의식이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생명의 양육권을 가졌다고 믿는 까닭이다. 아이의 띠
에 따라 파는 대상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큰 바위나 노간주나무와 같은 생명력이 강한 나무, 산
봉우리, 강물 등의 자연물에 판다. 파는 곳에 금줄처럼 무명실을 걸고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어머니와 무당이 비손을 하며 주문을 외우고 절을 한다. 아이를 팔고 나면 이름도 바꾸어 부른
다. 아이를 바위에 팔았으면 바우라 하고 산에 팔았으면 범이라고 한다. 용팔이는 용산이나 용소
에다 판 아이의 이름이다. 산신이나 수신, 용신 등이 아이를 보호하는 까닭에 잡귀잡신이 범접하
지 못한다고 믿는다.
아이팔기 풍속에는 자연친화적 공생 관념이 두루 갈무리되어 있다. 우선 자연과 인간의 생명관계
가 유기적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건강이나 길흉화복이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
라 자연과 긴밀한 연관성 속에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
면 인간 중심의 관계가 빚은 한계로 포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와 자연의 관계를 더 친밀
하게 맺어주는 아이팔기 의식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자연이 아이의 진정한 부모라는 믿음이다.
인간부모는 아이를 낳았을 뿐 아이의 건강과 수명을 지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진정한 부모라
면 아이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명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부모가 아니라 자연부모
이다. 사실 자연은 아이의 부모일 뿐 아니라 인간 모두의 부모이다. 자연을 부모로 믿고 섬기는
한 자연을 함부로 훼손할 리 만무하다. 부모 자식의 관계야말로 자연과 인간의 공생적 관계라 하
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명을 자연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생각 아래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인간을 올려두고 자연을 마음껏 유
린하는 자연 정복적인 인간중심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생명을 자연에게 위탁하면 자연
이 인간을 자식처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자연생명의 건강을 돌보
게 마련이다. 인간생명을 지켜주는 존재로서 자연을 섬기고 위하는 전통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친
화적 공생문화라 해야 마땅하다.
생명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시대에 가장 소중한 가치는 지속가능성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과학주의의 맹신에 빠져서 자연자원을 고갈시키고 생태계를 훼손시킨 결과 인류의 지속가
능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의 미래를 인간의 참부모인 자연에게 맡기지 않
을 수 없다. 자연생명의 건강이야말로 인간의 수명장수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믿음
은 이제 더 이상 민속신앙이 아니다. 자연을 인간의 새 부모로 모시고 섬기는 일이야말로 공생
의 세계를 실천하는 생태학적 삶의 길이다.

임재해 limjh@andong.ac.kr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의 저자,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소장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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