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월호] 나무와 숲이 있었네-독일 프라이부르크

나무와 숲이 있었네 / 국외편 4 독일 프라이부르크
인간이 만든 숲 - 흑림에서 배우는 독일인의 나무사랑

[월간환경운동 1997년 4월호]

글·사진 / 전영우(국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

산림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동경해 오던 독일의 흑림(슈바르츠발트;
Schwarzwald)을 직접 체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기다릴 만한 가치
가 충분히 있었다. 어느 해 가을 유럽에서 개최된 학술회의 참석은 일정을 자연스
럽게 흑림의 수도격인 프라이부르크 시까지 연장시켜 주었던 것이다.
흑림은 남부 독일의 산악지역, 특히 쥐라 산맥의 서쪽 지맥을 덮고 있는 길이 2백
km 폭 60km의 숲을 말한다. 이 지역이 흑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지금부터
2천5백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켈트족에 의해서였다. 음침하면서도 무성한 검푸른
숲에 대한 초기 정착민들의 인상이 흑림이라는 보통명사를 창조시켰고 그 이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초기 이주민들이 너도밤나무나 참나무 또는 단풍나무 같은 넓은잎나무들로 뒤덮인
흑림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그들의 정착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번 잘못
들어가면 헤쳐 나올 수 없을 만큼 울창했던 산마루 쪽의 무성한 숲은 켈트족이나
로마인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두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켈트족은 숲이 많지
않은 이 지역 골짜기의 언저리에서만 살았다. 2천년 전에 이 지역으로 진출한 로
마인들 역시 골짜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산마루를 덮고 있던 이 지역의 울창한
숲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수도원이 산마루에 설립되기 시작한 AD
800년경부터였다.
그러나 2천년 전 켈트족이나 로마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흑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잘 빗은 머리카락처럼 훌륭하게 가꾸어진 오늘날의 흑림도 한 때는 60년
대 초반의 헐벗은 우리 숲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백년 걸린 녹화사업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 거듭나
흑림 지역의 숲은 인구증가로 계곡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산마루 쪽으로 생활터전
을 옮기면서 결단이 나기 시작했고 특히 1800년대 초에는 산림황폐가 극에 달했
다. 그 당시 산림황폐의 주된 원인은 숲 속에서 자행된 지나친 목축과 산업화로
인한 목재 수요의 증가 그리고 당시의 부국 네달란드로의 목재수출 때문이었다.
과도한 방목과 남벌(濫伐)로 인한 산림황폐의 심각성을 인식한 독일인들은 그래서
1800년대 초부터 1백년 동안 대대적으로 국토 녹화사업을 시작하였다. 특히 천천
히 자라는 너도밤나무나 참나무를 베어 낸 자리에 경제성이 뛰어나고 빨리 자라는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를 대면적으로 심었다. 흑림 지역의 숲 80% 이상이 가문비나
무와 전나무로 조성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숲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엄청나게 늘
어난 목재 수요를 지난 2백여 년 동안 자연스럽게 충족시켜 주었음은 물론이다.
흑림 지역의 숲은 그래서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숲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숲이
다. 숲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한 독일인의 인식과 노력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새로운 흑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 발달된 임업은 지난 2백년 이
래 나무를 심고 가꾸어 매년 벌채하여 수입을 얻고 있으며,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벌채시기(伐期)를 맞고 있다.
매년 계속하여 나무를 벌채하여 수입을 얻는다는 것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상에서 유일한 재생가능한 자원인 산림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숲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
능한 발전 개념은 환경문제의 해결이 전 지구적 당면과제로 대두되면서 최근에야
제시된 개념이다. 그러나 임학은 이러한 개념을 이미 2백년 전에 보속(保續)경영
또는 보속수확이라는 개념으로 실제 현장에서 적용해 왔다.
흑림의 주된 가치는 이처럼 산업화에 필요한 목재를 원활하게 공급했던 점이다.
그러나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2백5십년 전에 파괴된 흑림을 인간의 손으
로 다시 복구시키면서 이 지역의 숲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태문화의
배경으로 자리잡게 된 점이다. 오늘날 흑림 지역이 자연보호나 환경보호의 모델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업이나 목축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숲을 알뜰하게
지키고 가꿈으로써 수백년째 이어온 흑림 특유의 경관을 오늘도 지켜 오고 있다.
경관이 수려한 우리 산하에서 오늘날 툭하면 관광 위락단지 건설이라는 구실로 엄
청난 규모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이곳에선 상상할 수 없다. 일시적 이익을
위해서 수백년째 기대어 살아왔던 숲을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생태적으로 건강하
게 유지시키면서 적절하게 이용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여러나라에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
흑림 지역을 독일인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까닭도 특별한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숲을 기반으로 수백년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
과 삶의 터전인 작은 산촌 마을들이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현
대인에게 흑림은 잊어버린 고향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흑림지역 자체가 소비적인
관광이나 레저보다는 생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산업주의 물질문명으로 파생된 인간소외, 자아상실, 배금주의 같은 현대문명의 물
질주의적 가치관을 치유할 수 있는 장소로 숲이 각광을 받고 있는 현장이 바로 흑
림인 것. 이처럼 흑림은 산림의 중요한 기능인 목재생산은 물론이고 공익 환경적
기능과 휴양 문화적 기능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생생한 현
장이다.
그러나 이곳이라고 해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환경재해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병충해나 폭풍피해와 같은 자연재해나 산성비로 인한 환경재해에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로만 구성된 침엽수림이 더 취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자연에 가까운
방법으로 여러 수종으로 구성된 숲을 만들고 가꾸려는 방안이 모색 중입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임학과의 라이프 교수가 지적하는 내용은 오히려 우리가 귀담
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잣나무나 낙엽송으로 대면적 단순림을 조성한 우리의 산
림녹화 실정에도 조만간 이러한 피해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을 세계 임업 선도국가로 만든 흑림
지난 2백년 동안 이들 바늘잎나무를 중심으로 새로운 숲을 복구시킨 독일인의 위
업은 오늘날 세계에서 숲을 가장 잘 가꾸는 민족이란 명예를 안겨 주었다. 또한 2
백년에 걸친 숲 조성의 경험과 연구는 독일을 세계 임업의 선도국가로 인식시키는
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황폐화된 국토를 가장 단기간에 녹화시킨 우리는 과연 어떠해
야 할까. 독일의 예로써 답을 대신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독일 국민
이 제 나라 숲을 지키기 위해서 쏟은 눈물겨운 정성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80년
대 산성비 피해로 독일 숲의 절반 이상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숲을 살리
고자 온 국민이 나서서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도록 여론을 형성하여 죽어가는 숲을
소생시킨 이야기가 그것이다.
어렵게 만든 우리의 숲, 전례가 드문 국토녹화사업의 성공이라는 기적으로 세계가
주시하는 우리의 숲을 더욱 숲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숲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애
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숲에 대한 국민의 애정으로부터 숲을 가꾸는 국가
적 실천도 나오기 마련이므로.


사진 1.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로 조성된 샤우인스랜드(Schauinsland)의 숲.
사진 2. 여러 연령층의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로 구성된 올파흐(Wolfach) 택벌림.
사진 3. 펠드베르그(Feldberg) 정상부에서 바라본 가문비나무 숲.
사진 4.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 숲에서 목재를 벌채하여 집재하는 장면(St.

Margen의 숲).
사진 5. 너도밤나무 숲(Kohlerhog).
사진 6. 알뜰하게 숲을 지키고 가꾸는 독일인이 산림관을 엿볼 수 있는 흑림의 중
앙부 구타흐(Gutach) 부근, 도로 주변의 숲들.
사진 7. 흑림지역의 사람들은 임업과 목축업을 생업으로 삼지만, 생태문화를 즐기
려는 도시인들에게 숲을 훌륭한 관광지로 제공한다. 흑림의 전형적인 산촌마을 풍

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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